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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차별 문제를 공포로 비틀어 놀라움을 선사했던 조던 필 감독이 칼날을 그들 자신(us)에게 겨눠,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미국(US, United States) 사회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27일 개봉한 ‘어스’를 통해서다.
영화의 시작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는 빈곤층을 돕기 위한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 캠페인을 비춘다. 이어서 어린 애들레이드를 화면에 담는다. 애들레이드는 산타크루즈 해변의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를 만나고 충격을 받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애들레이드는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30여년 만에 다시 산타크루즈 해변을 찾는다.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고 애들레이드 가족 앞에 그들과 똑같은 얼굴을 한 이들이 나타난다.
‘어스’는 공포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플갱어를 소재로 하고 있다. 애들레이드 가족이 휴가지에서 도플갱어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받는 이야기를 그린다. 상투적인 장치를 빌렸지만 조던 필 감독은 이번에도 독창적인 화법으로 예측할 수 없으며,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또 하나의 도발적인 공포영화를 완성시켰다.
메시지는 확장되고 더 예리하다. ‘어스’는 ‘겟 아웃’의 인종 차별 문제를 확장해 미국 사회에 퍼져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건드린다.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나 사마리아인에 대한 언급, 흑인가족과 백인가족의 대비는 빈부격차 및 인종차별을 드러낸다. 애들레이드의 아버지가 게임에 빠져서 어린 딸을 잃어버리거나, 애들레이드의 남편인 게이브가 도플갱어에게 허세를 부리다 도리어 당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장면은 가부장제를 비꼬는 듯하다. 그러면서 조던 필 감독은 단순히 문제의 지적에 그치지 않고, 그것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도플갱어들을 통해서 차별과 착취의 역사 위에 세워진 미국 사회의 문제는 근래나 외부의 요인에 있지 않고, 오랜 시간 지속돼왔으며 그들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us’이자 ‘US’로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어스’의 큰 장점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하는 몰입감이다. 애들레이드 가족이 도플갱어들과 1대1 생존게임을 하듯이 공격하고 방어하는 장면은 표현 수위가 높지만 장르적 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영화 곳곳에 숨겨둔 다양한 은유와 상징은 이야기에 대한 지속적인 호기심을 부여한다. 토끼·가위·그림자·쌍둥이 등 대칭을 이루는 대상들은 도플갱어의 존재를 암시하고 익숙한 대상들에 이질감을 부각시켜 애들레이드 가족에게 위험이 닥칠 것을 넌지시 알린다.
‘블랙팬서’의 히로인 루피타 뇽의 1인2역 연기는 훌륭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모정의 애들레이드와, 그런 그녀를 공포로 삼키는 도플갱어 레드는 마치 각기 다른 사람이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어스’는 ‘겟 아웃’ 이상이다. 소포모어 징크스도 조던 필 감독을 피해갈 것 같다. N차 관람이 반가운 작품이다.
별점 ★★★★(★ 5개 만점, ☆ 반점). 감독 조던 필. 러닝타임 116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3월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