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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유쾌하던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지난달 30일 인기리에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연출 이종재)을 집필한 노지설 작가였다.
‘백일의 낭군님’은 기억을 잃은 왕세자 원득/이율(도경수 분)과 신분을 숨긴 원녀 홍심/윤이서(남지현 분)의 로맨스다. 배우들의 호연과 탄탄한 대본, 아름다운 영상에 힘입어 자체 최고 14.4%(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도깨비’, ‘응답하라 1988’, ‘미스터 션샤인’을 잇는 역대 tvN 드라마 시청률 TOP4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시청률 보릿고개라는 요즘, 그것도 가장 치열한 월화 시간대에 이룬 ‘기적’이었다.
노 작가는 모든 공을 배우와 스태프, 시청자에게 돌렸다. 특히 주인공인 도경수와 남지현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담담하면서도 담대한 면모에 놀랐다”고 말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제작비 등을 이유로 사극을 기피하는 요즘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뜻을 꺾지 않은 건 “재미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백일의 낭군님’은 첩보물인 ‘본’ 시리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본’ 시리즈는 노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
“전에는 다른 사람 입맛에 맞추는 게 중요했어요. 어떻게 써야 편성이 통과가 될까 생각했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내가 재미있는 것’은 후순위였어요. 이번에는 ‘내가 뭘 써야 재미있지’라는 생각만 했어요. 만드는 사람부터 숙제처럼 작품을 만들면 보는 사람도 재미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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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의 낭군님’이 기대 이상 좋은 성과를 얻어 감사하고 기쁩니다. 그렇다고 또 부담에 파묻히면 예전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기작 또한 ‘백일의 낭군님’처럼 저부터 신나고 즐겁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열심히 찾아보려고 해요.“
이하 노 작가와 일문일답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며 마무리됐다. 역대 tvN 드라마 시청률 4위를 기록했다.
△이렇게 분위기가 좋았던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방영 전부터 화목했다. 출연자, 제작진, 스태프 모두 기분 좋게 끝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시청률은 수치라 그런지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시청률이 꾸준히 올랐다는 점이 더 기쁘다. 시청자가 조금씩 유입됐다는 게 의미 있었다. 시청자 분들께 진심으로 ‘갱장허게’ 감사드린다.
―이렇게 잘 될 줄 알았나.
△다들 재미있다고 했다. 내심 기대도 했다. 정말 열심히 썼다. 열심히 했다는 건 자신했다. ‘최종회에서 5%는 기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막상 첫 방송이 다가오니 소심해졌다. 자체 최고 시청률 5%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방송을 앞두고 108배를 다녀왔다. 첫 방송을 앞두고 출연자들의 V앱 방송을 했는데, 그 시간에 절에서 108배를 하고 있었다.
―성공 비결을 꼽아보자면.
△분명하다. 작품에 대한 배우들의 애정이다. 같이 일한다고 해서 모두 열심히 하는 건 아니다. 대충하다 갈 수도 있다. 모두 애정을 가지고 임해줬다. 이종재 PD님과 출연자들의 성품이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대본 리딩을 할 때 “행복한 작품이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바람이 이뤄졌다. 크지 않은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 분들도 애정을 가져줬다. 그런 기운이 모여 잘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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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다. 둘 다 20대 초반이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담대하고 담담하다. 어른스럽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바위처럼 흔들림 없다. 근사한 사람들이다. 대본을 쓰다보면 흔들릴 때도 있는데 두 사람의 듬직함이 좋은 영향을 줬다. 역지사지를 해보면 (기존 사극에서 보지 못한)8회 생일 잔치신이나 3회 엔딩인 멍석말이 장면이 생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불편한 기색 없이 최선을 다해줬다. 고마웠다.
―사극이란 장르로 인해 캐스팅 난항도 있었다.
△예상하긴 했다. 저부터 사극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요즘 사극을 기피하는 분위기 아닌가. 남녀 주인공이 예쁜 한복도 거의 입지 않는다. 4부에 다시 궁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평민복에 짚신인데 누가 선뜻 할까 싶었다. (도)경수 씨와 (남)지현 씨가 함께 하기로 하면서 두 배우를 자세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현 씨가 핀란드 캐릭터 무민을 좋아하더라. 저도 엄청 좋아한다. 성향이 맞겠구나 싶었다. 경수 씨는 눈이 예쁘고 눈썹이 멋있고 목소리가 좋고 손이 참 예쁘더라. (웃음) 그렇게 손으로 눈썹 만지는 장면을 생겼다. 둘 다 눈이 참 예쁘다. 눈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다. 제가 느낀 배우들의 예쁜 모습을 시청자들도 함께 느꼈으면 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익숙하지만, 세부 전개는 미묘하게 변주를 줬다. 그 점이 ‘백일의 낭군님’의 묘미였다. 그만큼 공들여 쓴 대본이란 느낌이었다.
△사전제작의 장점이 아닐까. ‘생방’ 촬영일 땐 3일에 한 권씩 써야 할 때도 있다. 이번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그만큼 대본에 공력을 쏟을 수 있으니 나아질 수밖에 없었다. 행운이었다. 당초 목표한 바가 ‘허를 찌르는 전개’였다. 회의 내내 ‘어떻게 하면 허를 찌를까’를 고민했다. (인터뷰②로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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