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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양승준 기자] 30초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송사고가 아니다. 배우 이서진은 시골집 침대에 누워 멍하니 쉬고 있었다. 백발의 이순재는 옆으로 누워 책을 봤다. 나오는 소리라곤 1950년대 활동했던 미국 컨트리 음악 가수 짐 리브스의 ‘히 윌 해브 투 고’ 음악이 전부.
tvN ‘삼시세끼’ 지난 5일 방송 일부다. 이 ‘말 수 적은’ 예능프로그램은 이날 시청률이 8.2%(AGB닐슨)가 나왔다. 비슷한 시간대 지상파인 MBC에서 방송되고 있는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시청률이 3%대. 이를고려하면 그만큼 시청자 반응이 높다는 얘기다. ‘삼시세끼’를 즐겨본다는 직장인 박성미(34)씨는 “특별히 뭘 하지 않아 좋고, 그냥 편안하게 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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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대중문화에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연말 히트곡 중 하나인 김동률의 ‘그게 나야’에서 마지막 1분은 가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오케스트라 연주만 흘러서다. 클래식도 아니고 가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긴 침묵’이다. 가수의 노래까지 줄여 여운을 키운 것이다. 아예 말을 없앤 방송까지 나왔다. 스카이라이프는 채널 힐링에서 하루 종일 자연 사진을 배경으로 잔잔한 음악만 틀어준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비워야 통하는 시대”라고 입을 모았다. 대중문화 콘텐츠에 공백을 둬야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말수와 작위적인 상황 연출을 덜고 공간을 이용하는 게 ‘삼시세끼’ 같은 관찰형 예능의 특징”이라며 “시청자에 뭔가를 주입하는 대신 빈 공간을 둬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 공감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진화된 예능의 형태”라고 평가했다.
대중문화 콘텐츠 속 ‘수다의 종말’은 느린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배경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과잉은 덕이 아닌 독”이라며 “숨 쉴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에 새로운 경험은 또 다른 피로라 대중문화 속에서 공간이 많은 콘텐츠를 찾아 위로와 치유를 얻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현상은 20~30세대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CGV에 따르면 ‘님아~’는 20대 관객의 비율이 약 54%로 가장 높았다. ‘삼시세끼’를 방송하는 CJ E&M 안미현 홍보팀 대리는 “20~49세 시청자로만 따지면 지상파를 통틀어 동시간대 시청률 1위(유료플랫폼 기준)”라며 “출연자의 말을 따라가거나 게임을 쫒아가지 않아도 돼 편안하다는 시청자 반응이 많다”고 반응을 들려줬다.
침묵을 즐기는 20~40세대 ‘ES(Enjoy Silence)족(族)’의 등장이다. ‘ES족’은 ‘침묵을 즐기는 집단’이라는 의미로 느림의 미학, 아날로그의 가치, 여백의 즐거움 등을 즐기는 도시 속 신세대다. ‘힐링’ 채널 편성담당자인 정윤성 스카이라이프TV PD는 “이 채널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가 주말 오후 6시 이후”라며 “‘무한도전’ ‘런닝맨’ 등 지상파 인기 예능과 주말드라마가 방송되는 시간대인 주말 황금 시간에 되레 힐링 채널 시청률이 가장 높아 놀랐다. 시끌벅적한 프로그램 대신 휴식을 즐기기 위해 채널 시청자들이 이 시간대 몰린 것 같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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