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중독 딛고 역전드라마…16년 만의 '포효'

주미희 기자I 2026.02.19 00:00:00

골프 인생 2막 연 앤서니 김
2000년대 PGA 투어 3승 거두며 돌풍
'타이거 우즈 대항마'로 전 세계 주목
부상으로 2012년 은퇴…2024년 복귀
LIV 골프대회서 람·디섐보 제치고 우승
우즈 "역경 딛고 우승…감동" 극찬

[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앤서니 김(40)이 약 16년의 긴 기다림 끝에 극적인 우승으로 골프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열었다. 한때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대항마로 불릴 정도로 전 세계 골프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돌연 자취를 감췄던 앤서니 김은 약물과 알코올 중독, 부상을 딛고 다시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다.

앤서니 김이 지난 15일 호주 애들레이드 더 그랜지GC에서 열린 LIV 골프 애들레이드 최종 4라운드 17번홀에서 버디 퍼트를 넣고 포효하고 있다.(사진=AP/뉴시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앤서니 김은 2006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가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8년 라이더컵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이 걸린 이 대회에서 앤서니 김은 유럽의 강자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며 미국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떠올랐다.

마지막 날 ‘0.1% 확률’ 뒤집고 다시 정상 우뚝

1985년생인 앤서니 김은 공격적인 플레이와 대담한 인터뷰, 강한 자신감으로 주목받았다. 전성기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였다. 2008년 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둔 뒤 2010년 셸 휴스턴 오픈에서 3승을 따내며 돌풍을 일으켰다. 2009년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 2라운드에선 11개 버디를 쓸어담아 단일 라운드 최다 버디 기록도 세우면서 “젊은 타이거를 보는 듯하다”는 극찬을 받았다.

‘포스트 타이거’의 선두 주자로 지목됐던 앤서니 김은 2012년 돌연 현역 은퇴를 선언한 뒤 필드에서 사라졌다. 엄지손가락으로 시작된 부상은 왼쪽 팔꿈치와 손목 통증으로 이어졌고, 컷 탈락과 기권이 반복되자 내린 결정이었다. 2012년 5월 PGA 투어 웰스 파고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그는 캐디백을 트렁크에 던져 넣고 대회장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27살. 이후 12년 동안 앤서니 김은 골프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그에게 손을 내민 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자본으로 운영되는 리브(LIV) 골프다. 2024년 LIV 골프는 ‘와일드 카드’로 앤서니 김의 이름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흥행카드로 내세웠다. 12년의 방황 끝에 복귀한 앤서니 김은 긴 공백의 벽을 실감했다. 두 시즌 동안 하위권을 전전한 끝에 시드를 잃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 1월 열린 LIV 골프 프로모션에서 3위에 오르며 극적으로 출전권을 확보했다.

지난 15일, 앤서니 김은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LIV 골프 애들레이드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존 람(스페인)과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에 5타 뒤진 채 출발한 앤서니 김은 보기 없이 9언더파 63타를 몰아치며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셸 휴스턴 오픈 이후 약 16년, 무려 5795일 만의 우승이다.

LIV 골프 해설진에 따르면 앤서니 김이 마지막 날 5타 차를 뒤집을 확률은 0.1%에 불과했다. 그러나 통계가 스포츠의 극적인 서사를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그는 다리를 차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그린으로 달려온 아내와 딸을 끌어안았다. 인생 반전을 완성한 장면이었다.

“심각한 약물·알코올 중독…가족이 구원의 힘”

앤서니 김은 우승 후 “내 인생의 모든 바닥을 딛고 일어난 순간”이라며 “퍼트가 들어갈 때마다 어두웠던 시간이 떠올랐고 그것을 극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경기는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공백기 동안 심각한 약물·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했다. 앤서니 김은 “20년 동안 거의 매일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생각을 했다. PGA 투어에서 뛸 때도 술과 약물에 의존해 나 자신을 잃었다”며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털어놨다.

아내와 딸로 인해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앤서니 김은 “딸 이사벨라가 지금은 이 순간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며 “딸이 아빠가 패배자가 아니라는 걸 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이다”고 말했다. 이어 “젊었을 때 나는 좋은 사람도, 좋은 파트너도, 좋은 아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우승은 단순한 1승이 아니다. 커리어가 사실상 끝났다고 여겨졌던 선수가 다시 정상에 선 상징적인 사례다. 그는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아도 괜찮다. 나 자신만 믿으면 된다”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 나도 계속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우즈도 ‘풍운아’ 앤서니 김의 우승에 대해 진심어린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우즈는 “한때 인생에 어려움을 겪고, 골프를 치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그가 모든 역경을 딛고 우승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했다”며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앤서니 김이 지난 15일 호주 애들레이드 더 그랜지GC에서 열린 LIV 골프 애들레이드 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아내 에밀리, 딸 이사벨라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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