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40주년 프로야구, 3대가 함께 찾는 리그 돼야"[만났습니다①]

이지은 기자I 2022.07.22 00:01:00

KBO리그 원년 멤버…1호 안타·타점·홈런 주인공
"초창기 야구는 전쟁…그 순수함으로 되돌아가야"
리그 사건·사고엔 "본받을 선배 없었다" 고개 숙여
선수단-프런트-언론 강조…"모두 프로페셔널 돼야"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 최근 오전 인천 연수구 송도동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이지은 기자] “조부모가 손주의 손을 잡고 올 수 있는 야구장이 돼야 한다.”

이만수(64)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 KBO리그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프로야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1982년 출범한 KBO리그의 원년 멤버다. 그가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첫 경기에서 기록한 1호 안타·타점·홈런은 불변의 역사로 남았다. 올해 출범 40주년을 맞은 프로야구는 그에게도 감회가 남다르다. 이 이사장은 최근 인천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이제 휴대폰 하나만 갖고 있어도 온 세상을 다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야구만큼 재밌는 볼거리가 없던 시대였다”고 회상했다.

이 이사장은 현역 시절 포수 골든글러브 5회 수상에 빛나는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은퇴 후에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코치로 선진 야구를 경험한 뒤 SK 와이번스(현재 SSG) 감독을 맡아 지도자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현장을 떠나서도 ‘야인’ 이만수의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2016년 자신의 별명을 딴 헐크파운데이션의 이름으로 재능기부 및 자원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는 물론 라오스, 베트남 등 해외도 주요 무대다.

그는 52년의 야구 인생을 통해 “야구는 나의 천직이고, 야구로 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을 통해 굉장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야구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는 더 진지했다. 이 이사장은 “초창기 멤버들에게 야구는 전쟁이었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목숨 바치듯 했다”며 “이런 순수함으로 되돌아가서 선수들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그게 곧 팬 서비스가 된다”고 내다봤다. 음주·도박 등 리그에 반복됐던 사건·사고가 인기 하락의 원인이라는 시선에는 “결국 후배들이 본받을 만한 선배들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이 이사장은 이를 선수단만의 문제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리그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선수단-프런트-언론’이 세 축의 톱니바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KBO리그가 앞으로 40년 이상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프로페셔널’이 돼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전부 생존할 수 없다”며 “할아버지와 손자, 즉 3대를 걸쳐 야구장을 찾으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이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 최근 인천 연수구 송도동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직접 경험한 프로야구 초창기는 어땠나.

△모든 면에서 인프라 구축이 안 돼 있던 시대였다. 야구장 시설, 운동 장비, 생활 환경, 연봉 등 모든 게 상상을 초월한다. 화가 나면 술 취한 사람들이 철조망을 타고 들어오고 쓰레기를 던지며 분풀이를 했다. 기록의 개념이 없던 때라 개막전 1호 기록을 썼던 볼조차 챙기지 않았다. 그래도 과거를 되돌아 보면 그 당시가 더 재밌었다. 그만큼 순수하게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몸이 안 좋아서 경기에 안 나가는 건 상상을 못하던 시절이었다.

-현재와는 훈련 환경도 많이 달랐을 텐데.

△현재는 경기 전 훈련이 아무리 길어도 3시간 안엔 끝난다. 그때는 오전과 오후에 훈련하고 경기에서 지면 숙소에서 또 연습했다. 경기를 위한 연습이 아니라 연습을 위한 경기를 하다 보니 정작 경기에 들어가서는 2회만 되면 선수들이 전부 지쳐 있었다. 비활동 기간 같은 것도 없어서 스프링캠프를 두 달 반씩 갔다. 너무 힘들긴 했다.

-당시 KBO리그 인기 원인은 무엇인가.

△고교 야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시절에 선수들이 그대로 프로로 올라왔기 때문에 팬들에게 쉽게 각인됐던 것 같다. 지역 연고도 더 강했다. 예전에는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와 광주의 해태 타이거즈(현 KIA)가 경기를 한다고 하면 한국시리즈보다 더 치열한 분위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이 유일하게 스트레스 풀 수 있는 곳이 야구장이었다.

-최근 프로야구 인기는 하락세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젠 재밌는 게 너무 많아져서 야구를 꼭 볼 필요가 없어졌다. 정신 차려야 한다. 눈에 보이는 쇼로 센세이션을 일으켜도 과거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팬들은 한 번에 돌아오지 않는다. 무언가 새로운 걸 하는 것보다는 선수단, 프런트, 언론이 프로 의식을 갖고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팬 퍼스트’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다.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 최근 인천 연수구 송도동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데.

△여기엔 할 말이 없다. ‘내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다. 예전에도 사고 친 사람들은 많았지만, 미디어가 별로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후배들이 보고 자란 게 그런 거라서 아니겠나. 그래서 나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내가 하는 걸 보고 후배 한 명이라도 따라왔으면 하는 목적 하나로 기부를 시작했다.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다른 부분이 있나.

△KBO리그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이는 팬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1%도 되지 않는 안 좋은 선수 때문에 모두를 싸잡아서 나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 미꾸라지 하나가 흙탕물을 만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깨끗해지기 마련이다. 일부 가십성 보도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긴 하지만, 좋은 보도들이 훨씬 많이 나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후배들이 자부심을 갖고 팬들을 위한 야구를 해줬으면 고맙겠다. 팬은 곧 고객이고, 팬이 없으면 야구를 할 수 없다.

-향후 40년 리그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나.

△미국에 10년 동안 있으면서 팬을 확보하기 위한 선수단, 프런트, 언론의 노력을 체감했다. 팬이 없으면 내가 아무리 잘해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든 오래가려면 구성원들이 프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팬을 확보하기 위한 MLB의 방안 중 우리가 적용할 만한 게 있다면.

△미국에서는 할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아들이 그 아들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는 것이다. 구단은 경기 시작 전 과거 스타들의 인터뷰나 플레이 등을 전광판에 틀어주며 3대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걸 벤치마킹하려면 프런트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MLB가 어떻게 100년이 넘도록 인기를 누릴 수 있었는지를 현지에서 충분히 머무르며 배울 기회가 제공됐으면 한다.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은…

△1958년 강원 철원 출생 △대구중앙초 △대구중 △대구상고 △한양대 체육학과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킹스턴 인디언스 타격코치 △샬럿 나이츠 1루 작전코치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포수코치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2군 감독·감독대행·감독 △육군사관학교 총감독 △라오 J 브라더스 구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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