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포르투갈·우루과이·가나...H조에 얽힌 얄궂은 악연들

이석무 기자I 2022.04.04 00:01:00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모국인 포르투갈과 운명의 장난 같은 대결을 펼치게 된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한국에 탈락의 쓴맛을 안겼던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즈.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카타르 국가대표 출신 아델 아흐메드 말랄라(카타르)가 ‘KOREA REPUBLIC’이라고 적힌 조 추첨 용지를 펼쳤다.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파울루 벤투(53)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월드컵 본선에서 자신의 모국인 포르투갈과 맞붙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2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에서 한국(FIFA랭킹 29위)은 포르투갈(8위), 우루과이(13위), 가나(60위)와 함께 H조에 배정됐다.

한국은 오는 11월 24일 오후 10시 우루과이와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 뒤 11월 28일 역시 오후 10시에 가나를 상대한다. 벤투 감독의 모국 포르투갈과의 3차전은 12월 3일 0시에 열린다. 3경기 모두 알라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참으로 얄궂은 인연이다. 벤투 감독은 조추첨을 앞두고 포르투갈 국영방송 RTP와 인터뷰에서 “월드컵 본선에서 조국 포르투갈과 맞붙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 바람을 외면했다. 그 많은 팀 가운데 포르투갈과 한국이 같은 조에서 만났다.

벤투 감독은 1992년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포르투갈 대표로 활약했다. 포르투갈은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한국에 0-1로 패해 16강 진출 실패의 쓴맛을 봤다. 당시 박지성이 결승골을 터뜨렸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팀 동료 주앙 핀투가 퇴장당하자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벤투 감독은 그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마감했다. 세월이 지나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 기막힌 우연이 찾아왔다.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한국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 입장이다.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서 조국 포르투갈과 맞붙게 됐다. 국내에선 ‘해볼 만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이어졌다. 하지만 벤투 감독의 마음은 결코 편할리 없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으로 유로2012 4강행을 이끈 적도 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곧바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지휘봉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대표팀을 맡고 있는 페르난두 산투스(포르투갈) 감독은 스포르팅 리스본 시절 벤투 감독의 스승이었다. 포르투갈전은 벤투 감독에 있어 스승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어차피 물은 엎질러졌다. 벤투 감독은 조추첨이 끝난 뒤 “개인적인 감정이나 생각은 분리해야 한다”면서 “포르투갈은 내 조국이지만 난 지금 한국을 지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포르투갈의 에이스 크리스타아누 호날두(37·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악연이 있다.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호날두는 국내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적어도 3년 전까지는 그랬다.

유벤투스는 K리그 올스타와 친선경기를 위해 2019년 7월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유벤투스 소속이던 호날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팬들을 ‘안티’로 돌렸다.

호날두를 보기 위해 수만명의 팬들이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았다. 하지만 호날두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단 1분도 뛰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야유가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기가 끝난 뒤 간단한 사과나 해명조차 없었다.

한국은 우루과이와도 악연이 있다. 한국은 우루과이와 월드컵에서 두 차례 만나 모두 패했다. 1990 이탈리아 대회 조별리그에서 0-1, 2010 남아공 대회에서는 16강에서 맞붙어 1-2로 무릎을 꿇었다.

특히 남아공 대회가 아쉬웠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1승 1무 1패 조 2위를 기록, 원정 월드컵 대회 사상 처음 16강에 올랐다. 하지만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2골을 내주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한국으로선 우루과이에 되갚아줘야 할 것이 많다.

사실 우루과이에 대한 기억은 가나가 더 안좋다. 남아공 대회에서 한국을 이긴 우루과이는 8강에서 가나와 만났다. 두 팀의 경기는 1-1로 맞선 채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수아레스가 연장 후반 막판 가나의 헤딩슛을 마치 골키퍼처럼 손으로 막아냈다. 고의적으로 손을 쓴 것이었다. 수아레스는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을 내주고 바로 퇴장당했다. 그런데 가나는 천금 같은 페널티킥 기회를 어이없는 실축으로 날려버렸고 승부차기에서 우루과이에 2-4로 패했다. 수아레스는 그 경기 이후 ‘신의 손’이라는 별명과 함께 국민 영웅으로 우뚝 썼다.

반면 가나는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12년 만에 월드컵 재대결이 성사됐다. 가나가 우루과이와의 재대결을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다.

그밖에도 포르투갈과 가나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맞붙은 경험이 있다. 서로간 대결에선 포르투갈이 2-1로 이겼지만 두 팀 모두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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