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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중국 베이징의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개인전에서 발리예바의 처참한 경기가 끝난 뒤, 투트베리제 코치가 발리예바를 꾸짖는 모습이 그대로 중계에 노출되면서 투트베리제 코치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목소리가 늘어났다.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을 보이고도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결정에 따라 올림픽 출전 자격이 유지된 발리예바는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번을 넘어진 데다가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경기를 펼치며 최종 4위(224.09점)에 그쳤다.
만 15세의 어린 나이에 ‘도핑 스캔들’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발리예바가 경기를 마치고 링크 밖으로 나오자 투트베리제 코치는 “왜 싸움을 완전히 멈췄니? 설명해봐. 왜 그랬어?”라며 발리예바를 다그쳤다.
미국 USA투데이는 투트베리제 코치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그가 허리 부상으로 인해 일찍 선수 경력을 끝내고 아이스쇼 투어를 다녔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 아이스 발레 쇼의 러시아 대표단 일원으로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168명의 희생자가 나왔던 1995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에서 살아남은 그는 이 테러의 희생자로 간주되어 단돈 1200 달러(약 143만원)를 받아 4년 동안 전국을 운전하며 다니다가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정착해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로 돌아온 투트베리제 코치는 삼보-70이라 불리는 모스크바의 유명한 링크 소속으로 러시아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는 세 명의 올림픽 챔피언을 배출한 명망한 코치가 됐다. 그가 지도하는 여자 선수들이 보기 드물게 4회전 점프를 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투트베리제 코치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15세였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의 코치를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당시 리프니츠카야는 빨간 원피스 코스튬을 입고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맞춰 연기를 펼치는 유대인 소녀 콘셉트에 경이로운 유연성으로 전 세계 피겨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의 단체전 금메달에 일조했다.
2018년 평창 대회에서는 당시 15세인 알리나 자기토바와 18세인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를 올림픽에 출전시켰다. 이들은 금,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번에는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안나 셰르바코바를 데리고 이번 베이징 대회에 왔고 셰르바코바가 금메달을, 트루소바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발리예바는 4위를 기록했다.
최근 가장 많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긴 했지만, USA투데이는 “피겨스케이팅계는 투트베리제 코치의 선수들을 ‘One and Done’ 올림픽 선수들로 간주한다”고 지적한다. 한 번의 올림픽을 위해 노력하다가 그 올림픽이 끝나면 선수도 반짝하고 끝이라는 뜻이다.
투트베리제 코치의 제자들이 유달리 선수 생활이 짧고 어린 나이에 은퇴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2018년 평창 대회에서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자기토바는 2019년 만 17세의 나이에 동기부여가 사라졌다며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이 매체는 “메드베데바가 평창 올림픽에서 2위를 한 것은 발 뼈에 금이 간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999년생인 메드베데바는 2020~21시즌부터 사실상 은퇴했다. 또한 리프니츠카야는 만 19세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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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일까.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트루소바는 팀 동료인 셰르바코바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모두가 금메달을 갖고 있는데 나만 없어!”라며 코치진을 향해 오열했다. 계속 선수 생활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두고봐야 할 문제”라며 답변을 피했다.
이렇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며 성공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반면에 탈락하는 선수도 많다.
일본 잡지 프라이데이는 “투트베리제 코치는 연습장을 ‘공장’, 선수를 ‘재료’라고 부르며 사생활까지 철저하게 관리, 지도한다. 화장, 걷는 것, 말하는 방법까지 가르친다”며 “연습을 가혹하다. 선수들에게 하루에 12시간씩 연습시키는 것은 당연하고 원하는 대로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으면 ‘짐 싸서 고향으로 돌아가!’라며 큰 소리로 꾸짖는다”고 설명했다.
자기토바도 한 번 쫓겨난 적이 있으며, 리프니츠카야와 거식증에 시달리다가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그는 소치 올림픽 중 셰이크만 섭취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메드베데바 또한 섭식 장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메드베데바는 후에 평창 올림픽 당시 몸무게가 43kg에 불과했다(키가 158cm)고 말했다.
이는 투트베리제 코치가 선수들의 체중까지 철저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과거 다큐멘터리를 통해 선수들의 체중이 100g 단위로 관리되고 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독일 빌트지에 따르면 투트베리제 코치의 지도를 받았던 폴리나 슈보데르바는 “발가락 2개가 부러져도 하루에 100번씩 똑같은 것을 연습시킨다. 필요하면 200번 시킬 때도 있었다”고 연습 문화에 대해 폭로했다.
프라이데이는 스케이트 연맹 관계자의 말을 빌어 “러시아는 선수 양성 시설을 국가가 전면적으로 지원한다. 투트베리제 코치도 국가적 사명을 받아 선수 트레이닝 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을 관리한다. 발리예바의 도핑 의혹에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나 CAS의 판단에 따라 투트베리제 코치에게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질 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WADA 측 관계자는 “미성년자의 약물 투여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판명되면 코치나 의료진은 영구 추방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감옥 수감까지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발리예바의 도핑 위반도 승리 지상주의가 가져온 결과다. 외신들은 100g 단위로 체중을 관리하는 투트베리제 코치가 선수가 복용하는 약을 모른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발리예바가 약물을 복용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학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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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드베데바는 “올림픽 직전 다리가 너무 아팠지만 (투트베리제 코치의) 강경한 면이 도움이 됐다. 코치가 부드러운 성향이었다면 100%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투트베리제 코치의) 코칭 방식은 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매년 견디기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사고 방식을 바꾸고 정신 건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다른 옵션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피겨 관계자들은 투트베리제의 방식을 비판한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투트베리제 코치가 발리예바가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뒤 그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발리예바가 그의 캠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볼 수 있는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며 이례적인 발언을 했다.
캐나다 아이스댄스 선수였던 케이틀린 위버는 투트베리제 코치는 선수들을 일회용 취급한다고 했고 피겨 전설 카타리나 비트(독일)는 “발리예바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영구 추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창 올림픽 페어 챔피언인 러시아 출신 알리오나 사브첸코(독일)는 “너무 마음이 아파 울었다. 15세 어린 아이(발리예바)를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고 보호했어야 했다. 코치는 아이를 그런 식으로 대하면 안됐다. 관련 없는 나조차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