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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시장 몸값 광풍, 한국 야구의 퇴보가 부른 아이러니

이석무 기자I 2021.12.21 00:30:00
계약기간 4년 최대 115억원에 두산베어스와 FA 계약을 맺은 김재환. 사진=두산베어스
계약기간 4+2년에 최대 115억원 FA 계약을 맺은 LG트윈스 김현수. 사진=LG트윈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선수들의 실력이 갈수록 떨어지니 지금 선수들의 몸값이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요.”

현재 학생 야구팀을 지도하고 있는 한 감독의 뼈아픈 지적이다.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 ‘광풍’이라는 표현도 틀리지 않다. 올해 FA 시장에는 이미 총액 100억 원을 넘긴 선수가 3명이나 나왔다.

전 두산 외야수 박건우(31)가 NC로 팀을 옮기면서 6년 100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박건우를 놓친 두산은 MVP 출신 외야수 김재환(33)을 4년 115억원에 붙잡았다. LG의 주장이자 간판타자인 김현수(33)도 4+2년에 최대 115억원 조건으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여기에 4년 60억원에 삼성에서 LG로 이적한 외야수 박해민(31), 5년 54억원에 한화 이글스에 잔류한 포수 최재훈(32)도 후한 대접을 받았다. KT와 4년 42억원 계약을 한 포수 장성우(32)나 삼성과 4년 38억원에 계약한 좌완투수 백정현(34)의 금액이 소박해 보일 정도다.

올해 FA 자격을 얻은 선수는 14명. 이 가운데 겨우 7명이 계약을 마쳤는데 계약 총액이 524억원이나 된다. 이미 지난해 FA 시장에서 기록한 446억5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사실 FA 시장은 이제 시작이다. ‘FA 최대어’ 나성범(32)은 최대 150억원에 육박하는 계약 조건이 점쳐지고 있다. 미국 도전을 마치고 돌아온 양현종(33)도 100억원 이상 계약이 유력하다. 황재균(34), 손아섭(33), 강민호(36) 등도 대형 계약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난 2015시즌이 끝나고 기록된 역대 FA 시장 최고액(766억2000만원)을 경신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심지어 사상 처음으로 총액 1000억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금 프로야구는 위기 상황이다. 악재가 겹치면서 야구 인기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라는 직격탄까지 맞았다. 제대로 관중을 받지 못하면서 구단 재정은 바닥을 찍었다. 적자폭은 더 커져만 가고 있다. 현장에선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FA 시장은 반대로 가고 있다. 구단은 돈을 벌지 못하는데 선수들 몸값은 하늘을 찌른다. 기현상이다. KBO리그 소속선수 평균 연봉이 2019년 1억5065만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달성한 이후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간 것과도 대조를 이룬다.

FA 시장 과열을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다. 어차피 몸값은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돈을 내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FA 몸값 상승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야구의 퇴보와 무관하지 않다. 좋은 선수가 꾸준히 나온다면 FA 선수를 비싸게 데려오지 않더라도 전력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탬파베이나 오클랜드 같은 팀은 비싼 선수 없이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

하지만 한국 야구 실정은 그렇지 않다. 뒤를 이을 젊은 선수들이 눈에 띄지 않개 때문이다. 특히 야수 쪽에선 손에 꼽을 정도다.

2021시즌 정규리그에서 20홈런 이상 때린 타자는 14명이었다. 이 가운데 20대 선수는 22홈런의 구자욱(28·삼성) 한 명뿐이다. 10개 이상 홈런을 친 선수는 35명인데 20대 선수는 8명에 불과했다.

타율은 다소 상황이 나은 편이다. 타격왕 이정후(23·키움)를 비롯해 3할 타율을 기록한 13명 가운데 강백호(KT), 홍창기(LG), 구자욱, 김혜성(키움), 박성한(SSG) 등 6명이 20대다.

프로 스카우트나 현장 지도자들은 향후 프로에 진출할 학생선수들의 실력 저하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그나마 좋은 자원들은 투수로 쏠린다. 야수쪽에는 선수가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학생야구 지도자는 훈련량 부족을 지적한다. 그는 “요즘 선수들은 학교 수업을 받은 뒤 방과 후에야 연습을 할 수 있다”며 “당연히 절대적인 연습 시간이 부족하니 실력이 좋아질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야구 관계자는 “기본기나 체력을 먼저 갖춰야 하는데 최근에는 기록이나 데이터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털어놓았다. 한 구단 스태프는 “좋은 자원들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선 리빌딩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등 국제대회를 보더라도 한국 야구의 퇴보는 뚜렷하다. 새로운 피가 한국 야구에 수혈되지 않는다. 실력이 검증된 선수들의 희소가치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금대로라면 이 같은 현상은 더 가속화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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