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연예인·유명인들의 선거 지원유세는 이들이 대중에게 쌓은 인지도, 친근감 등을 통해 정치인이 보다 정감있게 유권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다는 점에서 자주 활용되던 선거운동 전략이었다. 유세 현장에서 스타의 한 마디 지원은 대중의 환심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로 꼽히기도 했다. 연예인들이 정치적 소신을 드러내는 일도 적잖았고 그런 연예인들을 일컫는 ‘폴리테이너’라는 단어도 일반적으로 사용됐다. 이번 4·15 총선에서 연예인들의 지원 유세는 드물었다. 지원유세에 나선 연예인은 후보의 가족, 일부 원로 연예인들에 국한됐다. 연예계의 정치판에 대한 선긋기가 과거 총선과 달라진 특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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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지원 유세로 눈길을 끈 유명인은 1990년대 톱스타 심은하였다. 남편인 지상욱 미래통합당 후보(서울 중구·성동을)의 유세를 도왔다. 2001년 지 후보와 결혼하며 연예계를 떠난 심은하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지 후보의 내조를 톡톡히 했다. 이번 4·15 총선에서는 뒷전에 머무른 과거와 달리 전면에 나서 남편을 도왔다. 점퍼의 앞면과 뒷면에 ‘지상욱 배우자’라는 글귀를 새기는가 하면, 지 후보 없이 홀로 서울 중구 약수시장을 찾아 지역구민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배우 유오성은 형인 유상범 미래통합당 후보(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 배우 박정숙은 남편인 이재영 미래통합당 후보(서울 강동을), 클릭비 하현곤은 친척 형인 하창민 노동당 후보(울산 동구)를 가족이란 명분으로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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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서울 종로구) 유세 현장에 나타난 배우 전원주에게는 지지 정당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비난이 일었다. 전원주는 2012년 제19대 총선 당시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를 지원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친분이 있던 안상수 무소속 후보와 이학재 새누리당 후보 지원 유세에 가세한 바 있다. 그런 그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는 모습에 보수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권자들은 “철새 연예인”, “배신자” 등 댓글들이 달았다. 가수 겸 배우 배슬기 역시 김병준 미래통합당 후보(세종시 을)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진보 정당 유권자들에게 “우파 연예인”이라는 댓글을 받았다.
한 연예인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유세에 참여한 연예인 관련 기사 댓글들을 모니터링하면 좋은 말보다는 악플이나 보이콧하자는 의견들이 더 많다”며 “SNS로 간접 지지 의사를 표시하는 것만 해도 이미지 타격이 커서 연예인 본인도, 소속사도 주의하는 편이다. 정치에 뜻이 있지 않고서야 소신, 가치관을 드러내기 더욱 어려워진 시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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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예인의 이미지, 노래 등 콘텐츠를 선거운동 홍보물에 활용하는 것도 철저히 선을 그었다. 자칫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사전에 막기 위함이다.
래퍼 마미손은 오준석 민중당 후보(서울 동대문갑)가 자신과 노래 ‘소년점프’를 패러디한 홍보물을 내놓자 소속사 세임사이드 컴퍼니를 통해 “특정 정당 홍보나 후보의 홍보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며 “아티스트와 회사 동의 없이 어떤 관련 이미지와 저작물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김주영 역을 맡았던 배우 김서형 역시 지난 4일 총선 정당 후보에 자신의 초상권이 무단 도용됐다며 즉각 중단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의 소속사 마디픽처스는 “초상권 무단 도용의 문제가 확인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며 “김서형 배우는 어떤 정당 홍보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개그맨 유재석이 트롯 가수 유산슬로 데뷔해 인기를 얻은 곡 ‘사랑의 재개발’은 지난해 말부터 각 정당이 선거송으로 독점 사용하기 위해 물밑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특정 정당에 구애받지 않고자 모든 정당과 후보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예인들의 지원 유세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인 선거운동 전략이 되어버린데다 SNS·포털 등 온라인의 발달로 악플 창구가 늘어나면서 연예인이 정치적 소신과 조금이라도 얽힐 경우 입게 될 타격이 커졌다”며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정당이나 후보를 ‘악’으로 여기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을 배척하려 하는 확증편향 추세도 점점 심화되는 만큼 앞으로 선거에서 연예인 지원 유세를 찾아보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