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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그건 너’ 등 1970년대를 풍미한 대표곡부터 그 시절 즐겨 부르던 팝송까지. 우여곡절 많았던 그의 인생을 노랫말에 꾹꾹 눌러 담았다. 울릉도 예찬곡인 ‘울릉도는 나의 천국’, 쪽지만 남기고 떠난 전처와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쓴 ‘나는 누구인가’ 등 그의 노래는 곧 그의 인생이었다. 동방의빛 멤버였던 강근식(기타)·조원익(베이스)이 함께 했다. 빛나던 시절을 함께 보낸 음악 동지들이었다. 40년 동안 음악을 잊고 살았다는 그는 “한때 인생 그 자체였던 음악으로 다시 돌아와 벅차다”고 말했다. 콘서트를 위해 지난 2년 반 동안 오랜 친구들과 노래 연습을 해야 했다. 그 시간은 그를 다시 그 시절로 돌려놨다.
‘울릉천국’과 그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데뷔한 이장희는 4년 동안 가수이자 DJ,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발히 활동했다. 1960~1970년대 인기였던 대중음악감상실 세시봉의 멤버이기도 했다. 1975년 대마초 파동은 사업으로 시선을 돌린 계기가 됐다. 1980년대 초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곳에서 방송국 라디오코리아, 레스토랑 등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요세미티, 알래스카 등 미국에서도 틈틈이 자연을 누비던 그였다. 1996년 출장 차 한국을 찾은 그는 지인 추천으로 울릉도를 찾았다. 은퇴 후 하와이에서 살겠다는 계획을 바로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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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지금 공연장과 집이 있는 부지를 매입했다. 380m가 넘는 석봉이 내려다보고, 100년 된 약수터가 지근거리에 있는 그야말로 낙원이었다. 2004년 귀국해 울릉도에 터를 잡았다. 3년 동안 직접 농사도 지어보고, 조경으로 울릉도에서 가장 큰 호수도 만들었다. 20여년 사이 “압구정에 버금가는” 가격으로 올랐다.
공연장은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아이디어였다. 정원을 가꾸며 조용히 살아가던 이장희의 ‘울릉천국’은 갑자기 유명 관광지로 떠올랐다. 2010년 MBC ‘무릎팍 도사’ 출연이 기점이 됐다. 이장희는 집 앞 부지 일부(연면적 1652m²)를 기부하고, 경북도·울릉군이 70억 원을 지원해 지상 4층 규모 공연장이 건립, 이달 8일 개관했다. 이장희와 강근식·조원익 등이 주 2~3회 70분 공연을 개최한다. 이제 개관 공연 후 2주가 지났지만 도민들과 관광객 사이에 조금씩 입소문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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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에 가죽 재킷으로 오토바이를 몰던 그는 197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집을 옮겨가며 밤새도록 음악에 대해 논할 만큼 음악에 흠뻑 빠져 살았다. 자유분방하던 청년은 어느새 초로의 신사가 됐다. 그 시절 날렵함은 옅어졌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다. 여유도 느껴졌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입니다. ‘이장희’란 이름값에 연연하며 살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기 때문에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