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희 "은퇴 아직 먼 얘기..다음 목표는 메이저 우승"

주영로 기자I 2018.03.27 06:00:00

기아클래식 우승상금에 자동차 2대 보너스
긴 슬럼프 벗어날 수 있었던 한화의 믿음덕
32세 은퇴는 먼 얘기, 다음은 메이저 우승

지은희가 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칼스배드의 아비아라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기아클래식에서 통산 4승째를 달성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은퇴란 서른두 살 지은희에게 먼 얘기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대만에서 열린 스윙잉 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에서 8년 3개월 만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우승에 성공한 지은희가 5개월 만에 기아클래식에서 다시 우승했다. 2008년 LPGA 투어에 데뷔해 9년 동안 단 2승에 그쳤던 지은희는 최근 5개월 동안에만 2승을 추가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은희는 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칼스배드의 아비아라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쳐 합계 16언더파 272타로 크리스티 커, 리젯 살라스(이상 미국·14언더파 274타)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지은희의 날이었다. 11언더파 공동선두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지은희는 전반 9개 홀에서 버디 4개를 골라내며 우승을 향했다. 후반 들어서도 상승세는 계속됐다. 10번홀(파5)에서 이날의 5번째 버디를 잡아내며 점점 우승에 가까워졌다. 14번홀(파3)에선 자신의 우승을 예고한 축포까지 터뜨렸다. 166야드의 홀에서 7번 아이언으로 때린 공이 홀 바로 앞에 떨어졌다가 그대로 빨려 들어가 홀인원으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2위 그룹과의 간격을 4타 차로 벌리면서 사실상 우승을 예약했다. 이후 버디 없이 보기만 2개 적어냈지만, 우승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지은희는 오랫동안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2009년 US여자오픈 우승 뒤 무려 8년 동안이나 우승 없이 보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성적이 나지 않으면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지은희는 묵묵히 기다리며 땀을 흘렸다. 기다림과 노력으로 버텼다. 그 뒤엔 후원사의 믿음도 힘이 됐다. 지은희는 2013년 한화와 후원계약을 맺었다. 선수를 후원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성적이 부진하면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화는 2년마다 재계약하면서 지은희에게 계속해서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김상균 한화골프단 감독은 “우리에겐 잘하는 선수도 중요하지만 잘할 수 있는 선수도 중요하다”면서 “지은희는 그럴 가능성이 보인 선수였고 늦었지만 스스로 그 믿음을 확신으로 보여준 선수다”라고 평가했다.

지은희는 “2013년 한화와 계약을 맺은 이후 몇 년 동안 우승이 없었음에도 골프단에서 부담을 준 적이 없었다”면서 “항상 선수를 믿고 지원해줬기에 골프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포기하지 않고 땀으로 만들어 낸 새 스윙도 효과를 보였다. 한화골프단에 들어온 지은희는 2013년부터 조금씩 스윙을 바꿨다.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다. 10년 넘게 해온 스윙을 버리고 다른 스윙으로 만들려다보니 시간이 걸렸다.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였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경기하면서 새로 바꾼 스윙이 조금씩 자신의 것으로 완성되는 느낌을 받았다. 힘을 덜 쓰면서도 공을 더 강하게 때릴 수 있게 됐고, 일관성도 좋아졌다. 김 감독은 “2~3년 동안은 스윙에 대한 이해가 떨어졌었다”면서 “작년 에비앙 챔피언십 때부터 스윙에 대한 이해를 하기 시작했고 그 뒤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지은희 역시 힘든 시간을 많이 겪으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고 버티며 이겨낸 모습이 대견하다”고 우승을 함께 기뻐했다.

지은희는 아직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다. 선배는 물론 후배들 중에서도 필드를 떠난 동료들이 많지만, 그는 계속해서 필드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하고 있다. 지은희는 “힘든 시기에 한화를 만났고 믿음과 신뢰가 없었더라면 은퇴를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면서 “그러나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계속해서 골프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5개월 만에 다시 우승한 지은희는 숨겨왔던 목표를 밝혔다. 그는 “세계 1위가 가장 큰 목표”라며 “당장은 메이저 대회에서 또 우승하고 싶다”고 굳은 각오를 보였다.

지은희에겐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의 부친 지상기 씨는 경기도 가평의 청평호 주변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희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골프를 배웠다. 부친은 딸을 위해 호수 위에 부표를 띄워 놓고 맞히는 연습을 시켰다. 딸이 공을 치면 그 공을 주워와 다시 연습하게 했다. 그 모습을 본 지은희는 아버지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더 열심히 훈련했다.

지은희는 이날 우승으로 상금 27만 달러(약 2억9000만원)과 우승상품으로 기아자동차의 스팅어 자동차와 홀인원 부상으로 SUV 쏘렌토까지 2대의 차량을 보너스로 받았다. 지난 8년 동안 인내하며 버텨온 노력의 보상이다.

지은희가 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칼스배드의 아비아라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기아클래식에서 5개월 만에 우승을 추가해 통산 4승째을 올렸다. 지은희가 4라운드 1번홀에서 힘차게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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