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낳으려다 '오리알' 신세…위기의 골프장 '한국형 구조조정' 시급

김인오 기자I 2013.12.05 06:01:00
골프장 자료 사진(기사 내용과는 전혀 연관성 없음)
[이데일리 스타in 김인오 기자] #1 고급 회원제 골프장을 표방하며 기대를 모았던 강원도의 A골프장은 2009년 사업 승인을 받았으나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다. 회원제 골프장을 추진하다 대중제로 전환하려 했던 세종시 B골프장 역시 어려움을 겪으며 공사 시작도 하지 못했다.

#2 안성의 C골프장은 공사 도중 시행사 비리 등의 문제로 사업이 중단되고 결국 인허가지정취소 상황이 벌어지며 몇 년째 땅을 파헤쳐 방치해두고 있다. 춘천의 D골프장 역시 언덕 위 산소만 남겨두고 주위를 흉물스럽게 파헤쳐 둔 채 공사가 중단된 지 오래다.

업계에 따르면 2006년 이후 골프장 사업 승인을 받았으나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미착공 물량이 전국적으로 50여 곳에 달하고 있다. 이들 골프장은 최근 골프장 업계 위기에 따라 금융권에서 돈줄을 죄는데다 회원권 분양난이 겹치며 애를 태우고 있다. 골프장 업계와 관련해 잇달아 발표되는 각종 지표들도 심각한 업계 위기를 반증하고 있다.

◇국내 회원제 골프장 48.3% 자본잠식…법정관리에 경매도 줄이어

국내 회원제 골프장의 절반가량이 자본 잠식 상태인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불안감을 느낀 회원들의 입회보증금 반환 요구가 빗발치며 본격적인 골프장 대란이 예고되고 있다.

최근 한국레저산업연구소(소장 서천범)가 발표한 ‘자본 잠식된 회원제 골프장 현황’을 보면 전체 174곳의 48.3%인 84곳이 자본 잠식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신용평가정보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매출이 있다고 등록된 골프장 244곳 중 110곳(2012년 말 기준)이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06년 이후 골프장 공급 과잉과 시행사 문제, 회원권 거품 등 그동안 곪아온 골프장 업계 총체적 부실의 결과다.

지자체들이 세수 확보 차원에서 골프장 인허가를 남발했고, 다수의 시행사들은 회원권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골프장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투기목적의 골프회원권 거래가 성행했으므로 회원권을 분양해 대출금을 갚는 방식에 어려움이 없었고, 소위 ‘명품 골프장’을 앞세운 골프장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골프장 공급이 급증하면서 과당 경쟁이 일어났고, 대중제 골프장이 늘어나면서 골프 치는데 어려움이 없어지자 투자 목적의 회원권 거래가 줄어들었고 이는 시세 하락과 분양난을 초래했다. 더욱이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며 회원권 가격이 폭락해 ‘황금알’을 쫓던 골프장 업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여기에 일반세율의 최대 20배에 달하는 골프장 중과세도 악순환을 키웠다.

현재 전국에 법정관리 중인 골프장은 모두 19곳. 그 가운데 올해 10곳이 신청되며 골프장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경매시장에도 소위 명문골프장을 비롯해 올해만 9개 골프장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안성의 한 골프장은 자본금 1억원만 갖고 시작해 명품 골프장을 내세우며 회원권을 분양, 현재 부채비율이 27만%를 넘어서며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표적인 경우로 대표이사는 잠적하고 회원들 피해만 낳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입회보증금 반환 문제까지 불거졌다. 가입 후 5년의 거치기간이 지나며 업계에서 ‘시한폭탄’으로 지적해온 회원들의 입회보증금 반환 시기가 도래하자 금융 대출비용도 채 갚지 못한 골프장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전체 입회보증금 규모만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식 구조조정 전철 밟을까…‘한국형 구조조정’ 해법 절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골프장들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며 골프장 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900여 곳 이상의 골프장이 부도나며 외국자본인 골드만삭스가 설립한 프랜차이즈 골프장 아코디아골프와 론스타가 설립한 PGM(퍼시픽 골프 매니지먼트) 두 곳이 각각 100여 개 이상의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골프장 운영전문그룹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지난해 일본 전체 골프장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식 구조조정을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국내 시장 환경도 다르고, IMF때 외환은행을 인수했던 론스타의 국부유출 사례와 같이 해외 자본이 유입될 경우 ‘먹튀’ 우려 등 부작용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체시법)’에 따라 회원권 권리가 법으로 보장받고 있어서 일본식 구조조정은 법 개정이 있지 않은 한 어렵다. 게다가 각 골프장마다 복잡한 채무구조와 지배구조로 이뤄져 있어 이를 고려한 맞춤식 해법이 필요하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시장 논리에 의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이 되도록 놔두는 게 최상책이지 정부 지원 등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최근 부실 골프장 정리의 대안으로 인수합병(M&A)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형 구조조정’의 한 방법. M&A로 토종자본과 전문경영을 투입해 골프장 부실을 해결하는 게 국내 골프업계의 위기를 타개할 해법일 수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