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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한 배우다.” 얼마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제작사 대표가 김인권에 대해 트위트에 남긴 글이다.(그는 광해의 우직한 무사 ‘도부장’ 역을 맡았다.)
새 영화 ‘전국노래자랑’ 개봉을 앞둔 30일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인권의 첫인상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 딸의 아버지로, 지금은 돈 버는 기계가 됐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는 “배우로서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것보다 다음 작품이 들어오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밥벌이’로 연기를 한다고 소탈하게 털어놓는 배우 김인권에게서 진한 인간 내음이 풍겼다.
-영화 잘 봤다.
▲ 크게 내세울 것은 없다. 하지만 극장에 오면 뭔가 하나는 얻어 갈 수 있을 거다. 나도 영화 보면서 많이 울었다. 내가 연기한 캐릭터보다, 다른 사람들 얘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를 위해 노래 부르는 손녀의 노래부터, 짝사랑에 빠진 현자의 애절함까지. 오 영감 역을 맡은 오현길 선배를 보면서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어릴 때 같이 살았었다. 세대가 달라지면서 생기는 메울 수 없는 슬픔이랄까. 철부지 남편을 둔 미애(류현경 분)를 보면서도 고생한 내 마누라 생각나 짠해지더라.
-개그맨 이경규가 제작한 영화다.
▲ 주인공 봉남은 이경규 제작사 대표를 투영시킨 캐릭터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남자를 보면 개그맨 이경규가 떠오를 것이다. 이경규 대표는 실제로는 말수가 많지 않다. 진지한 편이다. 대표님도 이번 영화는 좋게 본 것 같더라.
- 극중 봉남은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가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실제로 연기하면서 생활고 겪은 적 있나.
▲ 늘 겪는다. 예전에는 금전적으로, 지금은 애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학부형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지금도 전셋집에 사는데, 집도 마련해야된다. 낮에는 부인 미용실 ‘셔터맨’, 밤에는 대리운전 뛰는 영화 속 ‘복남’이라는 캐릭터는 배우라는 직업과 맞닿아 있다. 실수하면 한방에 훅 갈 수 있고, 일 년 중 몇 달만 일한다. 안정적 직업이 아니다. 딸 셋을 키우면서 고생 많이 했다. 이제는 돈 버는 머신으로 살아야 되는데, 다음 작품이 들어오지 않을까 두렵다.
-군대 갔다와서 철들었다고 들었다.
▲ 2004년 전경으로 차출됐다. 훈련소 2주동안 살이 10kg 빠지고, 아주 심한 폐렴이 왔다. 그런데 아무도 배우대접 해주지 않더라. 훈련소에서는 내가 배우라며, 수류탄 던지는 시범을 시키더라. 상관이 와서 ‘왜 개런티 필요하냐?’며 묻더라. 노골적으로 사회물을 빼더라. 처음엔 조금 기분이 그랬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란 걸 느꼈다. ‘연예인병’ 싹 나아서 제대했다.
-왜, 연예사병으로 가지 않았나.
▲ 연예사병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악기를 다루거나, 노래를 잘 불러야 된다. 그런데 악기를 못 다뤘고, 노래를 불렀는데 떨어졌다. 자대배치 받고, 그 쪽 상관이 편한 곳으로 가면 인간 안 된다고, 일반 사병과 똑같이 군생활했다. 그 상관이 나를 인간 만들어서 보내겠다고 했다. 나이도 많고, 결혼해 애도 있어 말년에 좀 편하긴 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삶의 밑거름이 되는 시간이었다.
-대학 졸업 작품 ‘쉬브스키’ 감독도 했다. 단편 일줄 예상했는데 상영시간이 90분이 넘더라.
▲ 대학 졸업 작품인데, 사이즈를 키웠다. 객기에 극장에서 틀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부천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제대 후에는 시나리오 작업도 하며 연출 준비를 했었다. 선사시대 부족간의 전쟁을 다룬 영화였다. 그런데 제작단계에서 무산되고, 다시 배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은 감독할 생각 없다.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주로 찌질한 캐릭터 연기를 많이 했다. 너무 그쪽으로 이미지가 굳혀지는 거 아닌가.
▲ 현빈, 조인성처럼 될 수 없다. 나의 캐릭터를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장르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감초 조연도 좋지만 김인권만이 할 수 있는 역할 말이다. 대중을 즐겁게 해줄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캐릭터가 계속 반복되면 안 맡을 거다.
-현장에서 느끼는 조연과 주연 배우로서의 차이는 어떤가
▲ 주연은 위험하다. 조연은 영화의 결과와 상관없이 연기력만으로 연기를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주연은 영화가 망하면 시나리오가 안 들어온다. 성공해도 다음 영화 사이즈가 커져 부담이다. 주연한 영화가 문을 열었는데, 관객이 안 들어오면 비참해진다.
-‘전국노래자랑’이 ‘아이언맨3’와 극장에서 맞붙는다.
▲‘아이언맨’은 할리우드 코미디언의 결과물이다. 굉장히 재밌는 영화다. 이제는 한국 코미디를 볼 때가 됐다. 한국 사람이니까. ‘전국노래자랑’은 굉장히 따뜻하고, 뭔가 기억에 남는 영화다. 잘 돼야 된다. 세 딸이 울며 보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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