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불패의 병법](16)공정한 원칙이 팀을 살린다

정철우 기자I 2011.02.16 09:00:11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아침에 사람이 그러하듯 일어나는 기(氣)는 예리하고, 낮에 사람이 그러하듯 시간이 흐르면 그 기(氣)는 나태해지고, 저녁에 사람이 그러하듯 저무는 기(氣)는 돌아가 쉬고 싶어한다.

SK는 2011시즌 전반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모두들 "올시즌도 정규시즌 우승은 SK의 차지"라고 입을 모았다.

외부의 지나친 칭찬은 내부의 분위기를 흐트러트리는 주범이다. 신경쓰지 않으려 해도 칭찬의 시간이 길어지면 알지 못하는 사이 태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김성근 SK 감독이 후반기를 전.후해 잇달아 강공책을 내놓은 이유다. 그 중 하나였던 김광현과 상대 에이스 맞대결 카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김정준 코치는 이 즈음 또 한가지의 위험 요소가 팀을 잠시 흔들었다고 회상했다. LG와 4:3 트레이드가 그것이다.
▲ 최동수가 2010년 9월26일 문학 넥센전서 끝내기 안타를 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SK 와이번스
김 코치는 "LG와 트레이드 이후 미묘하게 팀 분위기가 흔들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문제'라고 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SK라는 팀의 특성상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SK는 트레이드 시한을 앞두고 LG에 투수 김선규와 박현준, 포수 윤상균을 내주고 1루수 최동수와 내야수 권용관, 외야수 안치용 투수 이재영을 받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킨다.

필요에 의한 트레이드였다. 거세게 추격하는 삼성에 강한 타자(안치용)와 박정권의 부상을 메울 선수(최동수)가 필요했다. 나주환의 군 입대로 생기게 될 2011시즌의 유격수 자리(권용관)에도 수요가 있었다.

하지만 즉시 전력이 되어 줄거라 생각했던 이적생들의 몸 상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적잖은 시간 동안 2군에 머물러 있었던 탓이다. 늘 1군에 머물러 있던 선수들에게 장기화 된 2군 생활은 전체적인 밸런스를 무너트리는 가장 큰 독이다.

반면 SK 마운드엔 전력 누수가 더 크게 생겼다. 선발 투수들의 잇단 부진 탓에 로테이션을 메워줄 투수가 부족해졌다. '박현준이 있었다면...' 이 즈음 SK 구성원이라면 한번쯤 떠올렸던 아쉬움이다.

김 감독은 최동수와 권용관, 그리고 안치용을 이적 첫 경기서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키는 파격을 선보였다. 선수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첫 경기 이후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부진에 빠졌다. 이재영은 부상 탓에 한참동안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SK는 팀이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는 팀이다. 그런 팀에서 1군 야수 15명 중 한꺼번에 3명이 바뀌는 트레이드란 유기적 움직임에 커다란 변화가 생김을 의미한다. 과장을 덧붙이자면 전혀 새로운 팀이 됐던 것이다.

새로 유니폼을 입게 된 선수들이 제 몫을 해내지 못할 경우, 변화가 가져오게 되는 파장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김 코치는 "일단 3인방의 몸 상태를 잘 몰랐다. 투수가 펑크났을 땐 박현준이 필요했다. 실질적으로는 고작 3,4경기 정도였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쉬움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트레이드가 이뤄질 당시의 팀 흐름, 영입된 선수들의 부진 등 악재가 겹친 셈이다. 보이지 않는 흔들림이 있었다"고 당시 팀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SK는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답은 간단했다. 그동안 지켜 온 원리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 기용에 있어 누구에게도 특혜를 주지 않는다. SK서 경기를 뛸 수 있는 선수는 현재 가장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선수일 뿐이다.

트레이드 3인방 중 최동수는 김 감독이 직접 낙점한 케이스였다. 게다가 그는 김 감독과 길고도 진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보통 팀의 경우라면 적지 않은 기회를 보장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SK는 달랐다. 기량이 기존 선수들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된 뒤엔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지금의 SK를 만든 대원칙은 사사로운 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선수들 스스로도 자정 능력을 보였다. 주장 김재현은 트레이드 3인방이 SK로 녹아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LG 출신으로 그들과 함께 호흡한 경험이 있는 김재현이다. 또 누구보다 LG 색깔을 잘 이해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했다. 드러나게 친절하진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김 코치는 "트레이드는 장기적 관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흔들렸던 것은 사실이다. 집중력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다. (전반기 호성적 탓에)선수들 마음에 여유가 생긴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뭔가 허술해졌었다. 그 과정에서 김재현이 조율을 잘 해줬다. 또한 선수들도 스스로 이기고 싶어하는 의욕을 다시 살려내며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적 선수들이 그저 손만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필사적으로 SK맨이 되기 위해 애썼다.

권용관은 부상 탓에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최동수와 안치용은 시즌 중 사실상 캠프처럼 훈련해야 했다.

이 중 안치용은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엔트리까지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엔트리가 발표됐을 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준비 기간 동안 가장 빼어난 실력을 보여준 선수가 그였기 때문이다.

최동수는 마지막 순간, 무척 인상적인 한방을 때려냈다. 9월 26일 문학 넥센전. 최동수는 극적인 끝내기 안타로 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김 감독은 이날 경기서 승리하면 선수들에게 '이틀 휴식'이라는 큰(?) 선물을 주겠노라고 약속했었다. 최동수는 SK 선수들에게 산타클로스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 경기 후 김 감독은 "최동수가 비로소 SK 선수가 됐다"고 말했다. 스스로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아 낸 제자를 향한 기특함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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