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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N 영화 리뷰] 탈색된 불륜의 가벼운 속삭임 '키친'

김용운 기자I 2009.01.20 08:00:00
▲ 영화 '키친'(사진=수필름)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어렸을 적부터 오직 한 남자만 바라봤던 여자. 남자를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여자에게는 그 남자가 사랑이었고 전부였다. 남자 또한 여자를 동생처럼 여겼다. 하지만 성인이 되자 달라졌다. 결혼한 둘은 행복했다. 그러나 둘의 사랑에 변수가 생긴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각본에 참여한 홍지영 감독의 데뷔작 영화 ‘키친’(제작 수필름)은 남편을 형이라 부르며 따르는 여자 안모래(신민아 분)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시크릿 러브스토리’라는 말로 영화를 포장했지만 ‘키친’은 결국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다. 안모래는 우연히 간 전시장에서 꽃미남 박두레(주지훈 분)와 만나 육체의 강한 끌림을 느낀다. 남편에 대한 죄책감에 이를 고백하지만 정작 일은 더욱 꼬여만 간다. 자신이 묘한 감정을 느낀 그 남자가 바로 남편 한상인과 동업하러 온 프랑스 입양아 출신 요리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박두레와 한상인 그리고 안모래는 한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한다. 물론 안모래와 박두레는 서로의 사이를 한상인에게 숨긴 채 말이다.

‘남편의 후배와 바람 난 아내’. 이는 치정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소재임에도 ‘키친’은 극단적인 전개에서 한 걸음 비켜나 있다. 홍 감독은 여성감독들 특유의 꼼꼼한 미장센을 비롯해 인물간의 소소한 감정 변화를 익숙한 솜씨로 화면에 버무려놓는다. 또한 주인공들에게 일상생활의 갈등을 부여하지 않는다. 덕분에 주인공들은 구질구질한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 오로지 사랑과 연애에만 집중한다.

홍지영 감독은 이 영화의 기자시사회에서 “사랑을 하는 구체적인 행위인 연애에 조금 더 극적인 면을 더하면 어떨까?’라는 욕심에서 비롯된 발상이 삼각연애였고 결국 이것이 ‘키친’의 모토가 됐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그런 측면에서 ‘키친’의 만듦새는 탄탄하고 허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홍 감독은 신민아를 비롯해 주지훈, 김태우로부터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뽑아냈고 배우들 역시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캐릭터들을 자신들의 연기로 녹여냈다. 인물들의 감정에만 집중하고 영화를 본다면 상당히 세련된 감성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 영화 '키친'에서 여주인공 안모래 역을 맡은 신민아

그래서 ‘키친’은 탈색된 불륜의 가벼운 속삭임 같은 영화다. 배우자의 부정에 대해 당사자와 남편은 이성을 잃지 않고 합리적(?)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애쓴다. 때문에 어느 인물도 그에 대한 상처로 파국에 닿지 않을 수 있었다. 덕분에 영화에서 사용된 가벼운 위트는 영화의 분위기를 역주행 하지 않고 관객들의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홍 감독은 관계의 불성실이란 말이 불륜에 비해 부부간의 외도를 표현하는 데 더 합당한 단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감독이 연출의 변에서 밝혔 듯이 ‘극적인 면’을 더하기 위해 결국 부부간의 윤리가 어긋나는 상황을 설정한 것은 아이러니다. 안모래가 박두레와 사랑에 빠진 것은 한상인의 불성실이 아닌 낯선 곳에서 만난 젊은 남자 박두레에 대한 끌림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공들인 화면과 소담스러운 음악은 ‘불륜’을 탈색시키는데 일조했다. 신민아는 배두나와 오버랩 되며 단순히 청춘스타가 아닌 배우로서의 자기 길을 관객들에게 보여줬다. 신민아의 연기가 돋보이는 것은 주지훈과 김태우의 안정된 연기가 배경이 됐다. 2월5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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