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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기행', 내가 장녀라서 눈물이 난 걸까?[봤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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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재 기자I 2026.08.13 23:4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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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조 감독 첫 상업영화 '경주기행'
지독하고 뭉클한 네 모녀의 앙상블
맏이도 막내도 무장해제시키는 가족 이야기

‘봤어영’은 화제의 영화를 직접 보고, 솔직한 감상과 관람 포인트를 전하는 리뷰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이데일리 스타in 최희재 기자] ‘왜 이렇게까지 눈물이 나지? 근데 감히 올해의 한국영화라고 해도 될까?’ ‘경주기행’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든 생각이다.

영화 '경주기행' 스틸(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 스틸(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끝난 후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이미 눈가 주변이 촉촉한 기자들 중에는 이상하게 장녀 비율이 높았다. 집에서 막내를 맡고 있다는 한 기자는 “동생 역에 이입이 돼서 ‘왜 나한테만 그래’라는 마음이 들었다”면서도 “우리 언니도 분명 울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장녀 출신 기자는 “동생들이 뭘 알겠냐”고 맞받아쳤다.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난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

영화 '경주기행' 스틸(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 스틸(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 복수는 그 상실감에서 시작되지만, 자극적이고 잔인한 기존의 사적 복수극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작은 벌레 한 마리조차 죽이지 못하는 평범한 가족의 붕괴를 담담하게 응시해 오히려 슬픔의 깊이를 더한다. 묵직한 서사 속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특유의 블랙코미디와 실소는 분위기를 적절히 환기한다.

‘경주기행’은 ‘가족이 뭐길래’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끝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피해자의 가족이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탓하면서도 결국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을 그저 따라갈 뿐이다. 이 라인업과 소재로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김미조 감독은 다른 방식으로 이 가족을 비춰낸다.

제목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제각각 다른 슬픔과 속앓이를 품은 네 모녀의 기록이다. 동시에 이들을 바라보는 기이한 세상, 기이한 시선, 기이한 판결, 기이해질수밖에 없는 모든 ‘기행’들을 내놓는다.

영화 '경주기행' 스틸(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 스틸(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완벽한 앙상블 하나만으로도 극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공효진은 ‘K장녀’ 그 자체다. 장녀로서 ‘K장녀’라는 단어에 씌워지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좋아하진 않지만,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동생들이 잘 커주길 바라느라 ‘나’라는 존재는 가족에 밀린다. 참다 참다 엄마에게 화를 내는 중에도 얼굴에 후회가 번지는 그의 얼굴은 전국의 장녀들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박소담의 단호한 눈빛과 입매는 ‘경주기행’에서 빛을 발한다. 네 자매의 둘째, 법대를 나온 엘리트지만 사실은 그 똑똑함을 내세워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었을 터다. 영주는 동생과 싸우면서도, 위험이 닥치면 동생을 자신의 뒤로 숨기는 언니다.

꿀밤 때려주고 싶은 셋째 동주, 이연의 존재감은 압권이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막냇동생을 잃은 셋째의 마음은 어떨까. 철없이 터뜨리는 듯 보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마그마를 숨기고 살아온 동주다. 이연이 실제 외동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변요한이 왜 ‘노개런티’로 출연했을까에 대한 호기심은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내가 변요한이어도 너무 재밌고, 짜릿했겠다’ 싶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내가 성장하고 싶어서 출연했다”는 변요한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 모든 시작과 끝엔 이정은이 있다. 관객들은 죽어있지만 살아내야하는 옥실의 응어리를 이정은의 지독하리만치 섬세한 연기를 통해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경주기행’의 노란 봉고차와 네 모녀의 공통점은 언제 고장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다. 새것처럼 고칠 수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순 없어도 청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서로를 향해 내달린다. 특히 장녀라면 눈물은 각오하는 편이 좋겠다. 김미조 감독 연출. 러닝타임 111분. 8월 26일 개봉.

영화 '경주기행' 포스터(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 포스터(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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