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씨는 “제가 커뮤니티에 썼다”며 “8월 7일 제가 그걸 듣고 이거 혹시 안상호 아니야?”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무위키 찾아보니 안하영이더라. 그래서 아 이 사람이구나 했다”고 덧붙였다.
배씨는 안상호를 두고 “일본으로 의학으로 유학을 갔다. 도쿄자혜의원의학교라는 곳”이었다며 “(유학)가서 일본에 대한 모든 걸 배워와서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해라 했더니, 같이 간 동료는 실제로 그렇게 했지만 본인은 그러지 않았다. 일본화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안상호가 귀국 후 의친왕과 친분을 쌓고 서양의학 강의를 했으며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갑자기 쓰러졌을 당시 어의들이 치료에 어려움을 겪자 양의학을 배운 그가 투입됐다고 했다.
배씨는 안상호가 고종을 진료한 이후 약 3시간 동안의 상황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이후 조선인들 사이에서 안상호가 고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주장했다. 고종의 혀와 치아가 검게 변하고 팔다리가 크게 부어 용포를 잘라 벗겨야 했다는 전언도 독살설의 근거로 제시했다.
또 덕혜옹주가 독살 위험을 지속해서 거론했다는 점과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 여사가 회고록을 통해 조선총독부의 지시를 받은 안상호가 고종을 독살했다는 취지의 내용을 남겼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배씨는 이 같은 내용이 역사적으로 확정된 사실은 아니라면서도 고종이 평소 건강관리에 힘썼던 인물이라는 점, 고종 독살 의혹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배씨는 증조부의 친일 부역 행적을 몰랐다는 하영의 해명도 비판했다.
그는 “그 배우 나이가 33세다. 알 거 다 아는 사람이다. 어려서 그런 게 아니다”라며 2005~2011년 언론 보도를 언급한 뒤 “인터넷 조금만 찾아봐도 다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진실을 안다면 그런 소리 절대 못 한다”며 “부끄러워서 그런 소리 못 한다”라고 거듭 말했다.
안씨는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예능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부께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했다. 증조부를 비롯해 할아버지와 아버지, 언니까지 의사라며 자신의 가족을 ‘4대째 의사 집안’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방송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는 안씨의 증조부가 안상호로 추정된다며 그의 친일 부역 행위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안상호가 1916년 결성된 친일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한 기록이 알려진 것이었다. 또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안상호가 자신을 일본인과 다르지 않다고 표현하고, 조선 옷을 입지 않으며 매운 음식도 먹지 않는다고 밝힌 내용이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린 사실도 다시 주목받았다.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안씨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이후 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안상호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하영의 조부 안부호의 소록도 근무 경력도 주목받았다. 하영 측은 이를 한센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설명했지만 안부호가 소록도에서 의사로 근무한 시기가 강제 거세, 낙태 등 한센인 인권침해가 자행된 시기와 겹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었다.
안씨는 전날 사과문을 올리고 “그동안 저는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부끄럽게도 그런 무지한 상태로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며 “그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20년 ‘흉물' 골프장에 1000가구…서울 유일 신규택지 가보니 [르포]](https://image.edaily.co.kr/images/Photo/files/NP/S/2026/08/PS26081400042t.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