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중국 경제개혁 사령탑’ 주룽지 전 총리 별세…"탁월한 지도자"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장영은 기자I 2026.08.12 22:21:09

Google 검색에서 이데일리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국유기업·금융 개혁 밀어붙여 시장경제 전환 주도
2001년 WTO 가입 협상 이끌며 ‘세계의 공장’ 기반 마련
중국 SNS서 추모 물결…개혁 성과와 구조조정의 그늘 함께 조명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끈 주룽지(朱鎔基) 전 국무원 총리가 12일 중국 베이징에서 별세했다. 주 전 총리는 1928년 10월생으로 향년 98세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이날 공동 부고를 통해 주 전 총리가 병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오전 11시 6분 베이징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그를 “뛰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자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평가하며, 그의 삶을 “혁명과 투쟁, 영광의 삶”으로 규정했다.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2017년 10월 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을 마친 뒤 퇴장하며 대표단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AFP)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2017년 10월 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을 마친 뒤 퇴장하며 대표단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AFP)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WTO 가입·대외개방 이끌어

1928년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난 주 전 총리는 1951년 칭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국가계획위원회 등에서 경제관료로 일했다. 문화대혁명 기간 정치적 부침을 겪었지만 이후 복권됐고, 1987년 상하이 시장에 취임하면서 중앙 정치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상하이 시장과 당서기를 지내며 도시 인프라를 정비하고 외국인 투자와 대외개방을 확대했다. 로이터통신은 주 전 총리가 상하이의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의 초기 변신을 감독했다고 보도했다.

1991년 국무원 부총리에 오른 뒤에는 중국 경제정책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당시 중국 경제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지만, △물가 급등과 과잉투자 △지방정부의 무분별한 사업 확대 △금융기관의 부실대출 등 부작용도 커지고 있었다.

주 전 총리는 중국인민은행장을 겸임하며 긴축정책과 금융·재정 개혁을 추진했다.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고 인플레이션을 낮추면서 중국 경제의 ‘연착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4년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세원을 재조정하는 분세제 개혁을 실시해 중앙정부의 재정 통제력을 강화했다.

1998년 국무원 총리에 취임한 뒤에는 개혁의 속도를 한층 높였다. 적자 국유기업을 폐쇄하거나 구조조정하고, 금융기관의 자본과 감독 체계를 정비했으며, 정부기구 개편과 주택의 사유화도 추진했다. 도시 주택 개혁은 중국 내 주택 소유 확대와 건설 투자 붐을 촉진했지만, 훗날 부동산과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커지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 전 총리의 가장 상징적인 업적으로는 중국의 WTO 가입이 꼽힌다. 그는 총리 재임 기간 미국 등 주요국과의 가입 협상을 주도하며 중국의 관세 인하와 시장 개방, 국내 경제제도 개혁을 밀어붙였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했고, 이후 제조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에 빠르게 편입됐다.

로이터는 주 전 총리가 중국을 WTO로 이끌기 위해 힘겨운 협상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당시 중국 내부에서는 가입 조건이 지나치게 많은 양보를 요구해 중국 경제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WTO 가입은 중국이 세계적인 생산·무역 강국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됐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위안화 평가절하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한 것도 주 전 총리의 주요 정책 결정으로 거론된다. 중국 정부는 이 조치가 역내 금융시장과 주변국 경제의 추가 불안을 막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해 왔다.

2003년 3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당시 총리였던 주룽지가 그의 마지막 정부 사업보고를 마치면서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사진= AFP)
2003년 3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당시 총리였던 주룽지가 그의 마지막 정부 사업보고를 마치면서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사진= AFP)
체질개선에 따른 대가와 직설 발언 논란도



주 전 총리의 개혁은 중국 경제의 체질을 바꿨지만 사회적 비용도 컸다.

국유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른바 ‘철밥통’으로 불리던 평생고용 체제가 흔들렸고, 수천만명에 이르는 도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중국 정부는 실업보험과 도시 최저생활보장제도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했지만, 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실업과 빈부격차 확대는 주 전 총리 시대의 대표적인 그늘로 남았다.

로이터는 곡물정책과 세수 배분, 국유기업 폐쇄 과정에서의 일부 판단이 이후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남겼다는 중국 내 평가도 소개했다. 주 전 총리의 재임 기간을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가능하게 한 대담한 개혁의 시기로 보는 시각과 구조조정의 충격과 불균형을 키운 시기로 보는 시각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프랑스24는 WTO 가입이 마오쩌둥 시대의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경제에서 중국을 ‘세계의 시장’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도, 중국의 시장개혁은 수백만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동시에 소득 격차와 지역 격차를 확대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했다.

그는 직설적인 화법으로도 유명했다. 2011년 출간된 4권 분량의 연설집에는 부실하게 지어진 제방을 “두부 찌꺼기”에 비유하고, 무능한 은행 관계자를 강한 표현으로 비판한 발언들이 담겼다. 공개석상에서 부패와 관료주의를 거침없이 질타한 그의 발언은 당시 중국 지도자들의 신중하고 정제된 공식 화법과 대비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 현지, 추모와 ‘개혁가 주룽지’ 재조명

주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프랑스24가 인용한 AFP 보도에 따르면 관련 검색어는 사망 발표 한 시간여 만에 1억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온라인에서는 그의 강력한 추진력과 청렴성을 기리는 반응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부패와 관료주의에 타협하지 않고 경제개혁을 밀어붙였던 모습, 공개석상에서 정책을 직접 설명하고 책임을 강조했던 태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11년 그의 연설집이 출간됐을 때도 중국 개혁파 전직 관료와 지식인, 잡지 편집자, 인터넷 이용자들은 주 전 총리의 발언을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비추는 거울처럼 받아들였다. 로이터는 당시 독자들이 지방정부 부채, 무분별한 은행 대출, 인플레이션, 도시개발 과열, 부패 문제에 대한 그의 발언을 현재에 던지는 시사점이 큰 메시지로 읽어냈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 당국의 공식 추모 메시지는 주 전 총리에 대한 평가와 함께 시진핑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당과 국가를 결집해야 한다는 현재의 정치적 메시지도 담았다. 프랑스24에 따르면 부고문은 주 전 총리의 정신과 품성을 계승하고 시 주석을 중심으로 당 중앙위원회에 더욱 긴밀히 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