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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을 연결하다, 서촌 북살롱 텍스트북[신문경의 독서문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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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경 기자I 2026.05.07 17:00:03

삶과 일의 전략 큐레이션 서점… 서울 서촌의 ''북살롱 텍스트북''
"책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가장 인간적인 반려"
와인·위스키·커피에 매일 바뀌는 음악… 서촌의 휴식처 역할
인왕산 자락의 고즈넉한 서점이 만드는 정서적 연결

변화하는 독서 문화 속의 독립 서점, 그리고 그곳을 만드는 사람들의 철학을 기록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 서촌이 내려다보이는 독립 서점 텍스트북의 창가 자리. 창밖으로 계절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등받이가 없는 검은색 가죽 의자는 유민영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사진=신문경 기자)
[이데일리 신문경 기자] 서울 종로구 인왕산 자락의 ‘북살롱 텍스트북’. 입구부터 책으로 가득했다. ‘삶과 일의 전략’을 주제로 한 서점답게 ‘삶의 학교’와 ‘일의 전략’ 큐레이션 코너가 문 앞에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위로’, ‘우정’, ‘변화’ 같은 이름의 코너가 이어졌다. 문화예술이나 철학 같은 딱딱한 분류 대신 삶의 맥락을 따라 구성한 것이었다. 어떤 책에는 책방지기가 직접 쓴 독서 후기 쪽지가 붙어 있었다. 금요일 오후 3시에도 창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저마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았다.

‘텍스트북’은 경영 컨설팅 회사 ‘플랫폼 9와 3/4’의 유민영 대표가 운영한다. 2022년 8월 회사 공동 운영 체제로 문을 열어, 지금은 유 대표 단독으로 이끌고 있다.

공간을 다듬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한때 수집했던 덴마크 미드 센추리 모던 풍의 가구와 소품, 원목 바닥과 창문이 잘 어우러지도록 신경 썼다. 그 사이사이 다양한 책을 놓아 서점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완성했다. “세상이 변하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테이블마다 이름을 붙이고 배치를 바꾸려 하는데 요즘 멈췄어요.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습니다.”

유 대표는 정서적인 연결을 가장 중시한다. “총 아홉 개의 창이 있어요. 창을 통해 사계절의 풍경을 경험하며 자연과 이어지죠. 유리 벽으로 공간을 나눈 것도 이용객이 서로 단절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도 그 마음의 연장선이다. 유 대표는 유리 공간 안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하거나 창밖의 계절을 감상한다.

100권으로 시작한 ‘텍스트북’에 지금은 1,500여 권이 있다. 손님들이 잊고 있던 책을 찾아낼 때마다 유 대표는 기쁨을 느낀다고 전했다. 뜻밖의 발견과 정서적 연결. 그가 독립 서점 텍스트북을 통해 만들고 싶은 것이다.

유민영 대표는 경영 컨설팅 회사 '플랫폼 9와 3/4'와 독립 서점 ‘텍스트북’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사진=신문경 기자)


-초창기와 기획 방향성이 달라진 것 같다.




△오만했다.(웃음) 회사에서 읽고 공부하던 전략서와 자기계발서를 채우면 지속될 줄 알았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깨달았다. 이곳은 운영자와 이용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것을. 그 뒤로 고객의 시선에서 책을 다시 골랐다. 회사가 운영할 때는 목표를 실현하려는 의욕이 앞섰는데, 내가 단독으로 맡은 지금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편이다. 대신 매출에 대해서는 훨씬 겸손해졌다.

-책을 들이는 기준이 새로 생긴 건가.

△손님들이 주로 찾는 책과, 별도로 요청하는 책을 함께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손님마다 찾는 분야가 제각각이다. 봄으로 접어든 요즘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책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노르망디에서 아이패드로 그린 화사한 회화를 담은 책이다. 필사 코너도 인기다. 그 중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를 모은 ‘바쇼 하이쿠 선집’이 꾸준히 나간다.

-손님들이 주로 어떤 책을 찾는지 궁금하다.

△정말 다양한 책이 판매된다. 나는 ‘뜻밖의 발견’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물론 잘 팔리는 책을 잘 보이는 자리에 두기도 한다. 그런데 1,500권 중에 나도 어디 있는지 잊고 있던 책을 찾아 읽거나 사는 손님이 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취향과 정서는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책을 통해 뜻밖의 발견과 연결이 일어난다는 게 행복하다. 자산 투자서가 많이 팔리는 요즘이지만 텍스트북에서는 많이 다루지 않는다. 책도 기호식품처럼 소비되는 것 같다. 특정 분야에만 쏠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관심의 영역이 넓어지면 좋겠다.

-좋은 책은 어떻게 발견하나.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는 것이 본업이다. SNS, 뉴스 등 다양한 채널로 트렌드의 흐름을 포착한다. 출판사와도 커뮤니케이션하고, 때로는 알고리즘이 책을 연결해 준다. 어떤 사건이나 뉴스 안에서 책이 등장하는 때도 놓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이 ‘크루서블 프로젝트’와 ‘트로이카 드라이브’ 등 책 3권을 추천했다는 소식처럼. 주말에는 신문 책 소개면을 챙겨본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일 자체가 뉴스를 보고, 세상과 책이 연결된 지점을 보는 것이니까.

‘위로’를 전하는 큐레이션 코너. 책 표지에는 책방지기의 짧은 독서 후기가 붙어 있어 책을 고를 때 참고할 수 있다.(사진=신문경 기자)
Q. AI 시대에 책과 서점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류가 AI,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됐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면서도 인간미를 지키는 것이 지금 가장 큰 화두다. 인간이 만든 것 중 가장 인간적인 반려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기계화되지 않은 인간을 지키는 방법이며, 외로워지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개인화된 시대일수록 취향으로 묶인 공동체가 생겨난다. 아이디어와 생각으로 연결된 세계에서 책은 가장 훌륭한 외교관이다. 서점을 찾아오는 분들과 운영하는 사람 사이에서도 뜻밖의 연결이 일어나면 좋겠다.

-책과 함께 술도 즐길 수 있다. 어떤 생각에서 시작했나.

△텍스트북에는 9개의 창이 있고, 풍경처럼 음악도 매일 바뀐다. 거기에 와인, 위스키, 커피까지 더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침 오픈 직후에 와인을 찾는 분도 있고, 퇴근 후 위스키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도 있다. 텍스트북은 책과 함께하는 피난처이자 휴식처다.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찬찬히 둘러보며 자신만의 책과 음료를 고른다. 방해하지도, 방해받지도 않으면서 서로에게 기댄다.

-느슨한 연결을 중시하는 것 같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오래 해 주세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이 더 크게 와닿는다. 이익과 매출 욕심은 많이 줄었다. 유지만 된다면 좋다.(웃음) 부산에서 휴가 때마다 오는 분이 계신다. 1년에 한두 번밖에 못 오시는 거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가시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대화를 나눌 때도 있다. 좋아하는 장소가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실감한다. 언제 오시더라도 우리가 이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365일 문을 연다.

큰 창으로 들어온 자연광이 텍스트북 내부를 밝힌다. 중앙 원목 테이블과 벽면 서가에 도서가 진열돼 있다.(사진=신문경 기자)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나.


△북토크는 먼저 제의가 들어오면 진행하고, 결이 맞지 않으면 정중히 거절한다. 때로 ‘텍스트북’에서 임원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트렌드 강의를 짧게 하고 내가 퍼실리테이터로서 질문을 이끄는 형태다. 핵심 프로그램은 책을 골라 서로에게 선물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는 것이다. 일 중심의 관계에서는 서로를 잘 모르는데, 취향을 공유하면 자연스럽게 자기 얘기를 꺼내며 소통할 수 있다. 저녁엔 식사와 와인 한 잔으로 마무리한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신청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 인왕산 자락을 산책하며 책도 추천하는 세미 워크숍도 생각 중이다.

특별한 운영 철학은 없다. 책을 매개로 한다는 것 자체가 비교적 선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서점 운영자가 먼저 나서기보다는 고객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려 노력한다.

-책을 구매할 때 ‘오늘의 문장’을 함께 전한다던데.

△서점에서 엄선한 문장들이다. 이걸 계기로 어떤 우연한 교감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문장을 가져가는 분이 대부분이다. 우연히 좋은 문장을 만난 기분이라고 한다.

-추천하는 문장이 있나.

△‘좋은 친구, 한 번 더 만나고 살자.’ 아주 각별한 사이나 가족이 아니면 100번도 못 만나고 산다. 몇 년 전에 이 문장으로 송년 인사를 했다. 물론 만나서 부딪히는 게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더 연락해 만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큐레이션 코너. 오른쪽 벽면에는 서점 방문객들이 남긴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사진=신문경 기자)


-‘텍스트북’을 찾는 사람들에게 책을 한 권 추천한다면.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이다. 작가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건넨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라는 구절이 오래 남는다.

■북살롱 텍스트북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자리한 독립 서점. 경영 컨설팅 회사 ‘플랫폼 9와 3/4’의 유민영 대표가 운영한다. 1500여 권의 책과 함께 와인, 위스키, 커피를 즐길 수 있으며, 매일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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