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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던 사람만 알던 그 신발”…파브, 대중시장 문 노크
현재 국내 러닝화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러닝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운동화 시장 4조원 가운데 러닝화만 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나이키·아디다스 같은 전통 강자에 호카·온(On) 등 신흥 브랜드가 가세하면서 카본 러닝화는 빠르게 대중화 됐다. 업계에서는 러닝화 시장의 무게중심이 카본화 쪽으로 빠르게 옮겨갈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자주 뛸 여유도 없는 아마추어 러너가 30만~50만원짜리 엘리트 선수용 신발을 사야 하는지 늘 망설여진다. 국내 러닝화 브랜드 파브(FAAB)가 최근 출시한 ‘카본 내비’는 이 지점을 정조준한 제품이다. 파브는 울트라 마라톤 러너들을 대상으로 20여년간 소규모 주문 제작을 해온 마니아 브랜드다. 창업자가 고령으로 사업을 접으려 하자 마라톤 선후배 사이였던 김준형 대표가 브랜드를 인수해 재출발했다. 카본 내비 출시와 함께 지난달 말부터 일반 소비자 대상 판매에 들어갔다. 마니아용 한정 생산 브랜드가 처음으로 대중 시장의 문을 두드린 셈이다.
마니아 입소문 제품이라고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다. 카본 내비의 판매가는 15만원대. 글로벌 카본화의 절반 이하다. 비결은 거품을 걷어낸 구조다. 글로벌 메이커에 납품하는 동일 공장에서 생산해 품질은 같은 수준이다. 대신 셀럽 마케팅 비용과 유통 마진을 모두 덜어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단독 판매로 중간 단계도 없앴다. 마니아 브랜드의 노하우를 그대로 살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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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 직접 신고 달려봤다. 첫인상은 가벼움. 260㎜ 기준 220g으로 일반 운동화 한 짝 무게로 두 짝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첫 발을 내딛자 스프링처럼 팡팡 튀어 오르는 반발력이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진다. 비결은 미드솔과 인솔(깔창)의 조합이다. 미드솔엔 첨단 복합소재 E-TPU에 풀카본 플레이트를 결합했다. 아디다스 부스트 시리즈와 같은 계열의 소재다. 인솔은 이중 구조로 상부엔 오쏘라이트(Ortholite) 폼, 하부엔 고밀도 폴리우레탄을 넣어 충격을 분산시킨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카본의 단단한 반발과 인솔의 푹신함이 미세한 시차를 두고 함께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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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지 않는 날엔 산책용으로도 손이 자주 갔다. 크림 톤 어퍼에 오렌지 미드솔이 살짝 비치는 정도라 청바지에 받쳐 신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동네 카페나 마트에 갈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 갑피(어퍼)는 폴리우레탄 탄성체(TPU) 기반 엔지니어드 메시(그물 직조)로, 실 한 가닥을 부위별로 촘촘하거나 성기게 엮어 꿰맨 자국 없이 통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한국인 발 형태에 맞춘 3E(EEE) 와이드 발볼을 채택해 양옆 압박감을 줄였다. 통기성과 지지력을 동시에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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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온도 비켜선 빈틈…거품 뺀 반값 브랜드
제품의 또다른 백미는 내구성이다. 사흘간 러닝과 산책용으로 신었지만 아웃솔(밑창) 마모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강화 캐스트 폴리우레탄(CPU) 소재 덕이다. 최고급 레이싱화의 표준 마모 시험 결과(DIN 마모수치)는 보통 50~100㎟다. 반면 파브는 카본 내비의 수치가 20㎟에 그친다고 설명한다. 2.5~5배 오래 간다는 의미다. 파브는 1년에 걸친 로드 테스트로 1000㎞ 주행에도 쿠션이 유지됨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카본화 권장 수명 300~500㎞의 두 배가 넘는다.
거품을 걷어낸 국내 카본화의 등장은 신제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글로벌 카본화 시장은 그간 고가·짧은 수명·부상 우려라는 삼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스위스 브랜드 온은 카본 라인을 20만원대 후반에서 30만원대로 유지하는 프리미엄 정책을 고수한다. 나이키와 아식스도 진입 장벽을 좀처럼 낮추지 않는다. 여기에 카본화 시장 강자인 호카마저 지난해 12월 국내 총판 대표의 폭행 사건 여파로 휘청이고 있다. 대기업 위주의 카본화 시장에 조금씩 균열이 나기 시작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