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제이알글로벌리츠는 벨기에 파이낸스타워 자산의 ‘캐시트랩 발생 가능성’을 공시했고, 이틀 뒤 실제로 캐시트랩이 발생했다. 현금흐름 제약이 현실화한 만큼 유동성 위기의 전형적 전조로 읽혔다. 시장에서는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신평사의 대응은 즉각적이지 않았다. 한국기업평가는 17일 기존 등급을 유지한 채 전망만 낮췄고, 한국신용평가는 20일 등급을 하향했지만 여전히 투자적격 범주에 머물렀다. 위기 신호가 뚜렷했음에도 시장에는 ‘투자 가능’ 메시지가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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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후다. 회생절차 신청과 채무불이행이 현실화하자 신용등급은 단숨에 ‘D’로 급락했다. 불과 한 달 사이 우량등급에서 디폴트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시장 입장에서는 “사전에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 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신평사 간 미묘한 신경전도 감지됐다. 한쪽은 평가가 채무불이행 등 핵심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다른 쪽은 오히려 상대가 위험 신호를 충분히 드러내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늑장 대응에 대한 자성보다는 책임 소재를 둘러싼 해석 싸움에 골몰하는 상황이다. 신용평가가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제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특징은 피해 구조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채권은 리테일 비중이 높은 상품이다. 실제로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우량등급을 믿고 투자했는데 문제가 터지자마자 등급이 급락했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며 불신은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신용등급은 투자 판단의 출발점이자 위험을 가늠하는 핵심 잣대다. 특히 개인 투자자에게는 사실상 공인된 안전 신호로 작용한다. 그만큼 신평사의 책임은 무겁다.
때문에 선제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위기가 현실화된 뒤 급격히 등급을 낮추는 것은 사후 대응은 의미가 없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맞는 평가’ 이전에 ‘경고의 적시성’이다. 명확한 리스크 신호가 포착됐다면 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에 나섰어야 했다.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시장의 기반도 흔들린다. 늑장 대응과 책임 공방으로는 ‘신용평가사의 기만’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