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 그라운드제로. 25년 전 9·11 테러로 동생을 잃은 짐 지아코니는 다시 한번 동생의 이름을 소리 내 불렀다. 그는 “적어도 1년에 하루는 이곳에 와서 동생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다”며 “그러면 여러분이 그 이름을 듣고, 그는 여기에 존재하며 결코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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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은 9·11 테러 희생자 2977명과 1993년 WTC 폭탄테러 희생자 6명 등 모두 2983명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25년이라는 세월을 보여주듯 이날 이름을 읽은 사람 중에는 2001년 세상을 떠난 가족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후손들도 있었다.
25년 만에 추가된 ‘일곱 번째 묵념’
올해 추모식에는 이전과 다른 장면이 하나 추가됐다. 9·11 이후 관련 질병으로 숨진 사람들을 기리는 일곱 번째 묵념이다.
그동안 추모식에서는 두 대의 여객기가 WTC 쌍둥이 빌딩에 충돌한 시각과 두 건물이 무너진 시각, 펜타곤 피격과 유나이티드항공 93편 추락 시각에 맞춰 여섯 차례 묵념했다. 올해 처음으로 테러 이후 유독성 먼지와 잔해 등에 노출돼 암과 호흡기 질환 등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한 묵념이 더해졌다.
9·11의 희생자는 2001년 9월 11일에 멈추지 않았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WTC 건강 프로그램에는 현재 생존자와 구조·복구 인력 등 14만5000명 이상이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5만7000명 이상이 암 진단을 인정받았다. 최근 2년 동안에는 매년 약 1만명씩 프로그램 가입자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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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현장에 출동했던 사람들은 이제 조직에서도 소수가 됐다. 당시 32세의 응급의료서비스(EMS) 교관으로 현장에 투입됐던 릴리언 본시뇨레 현 FDNY 국장은 현재 약 1만7000명의 조직을 이끌고 있지만 이 가운데 9·11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약 700명에 불과하다. 그는 “소방국은 여전히 그날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 30%는 9·11 기억 못하는 세대
9·11을 기억하는 미국인도 점차 줄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 약 1억명, 전체 인구의 약 30%는 당시 상황을 직접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린 세대다. 25년 전 두 항공기가 쌍둥이 빌딩에 잇따라 충돌했던 17분이 한 시대를 규정했지만 이제 9·11은 점차 개인의 기억에서 역사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날이 미국 사회에 남긴 흔적은 여전히 크다. 9·11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었다. 장기간의 해외전쟁에 대한 피로와 반발은 이후 미국 정치의 고립주의·비개입주의 흐름을 강화했고 새로운 해외 군사개입에 반대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이터는 현재 진행 중인 이란전쟁이 새로운 해외전쟁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을 다시 시험하고 있다고 짚었다.
9·11 이후 미국 사회가 하나로 뭉쳤던 기억의 이면도 있다. 무슬림계 미국인과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들은 테러 이후 편견과 증오범죄에 시달렸다. 미국 최초의 무슬림 뉴욕시장인 조란 맘다니 시장은 일부 공화당 인사들로부터 올해 추모식에 참석하지 말라는 요구까지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이날 그라운드제로를 찾았다.
25년이 흘렀지만 유족들에게 9월 11일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당시 칸토어 피츠제럴드에서 일하던 남편 마이클을 잃은 다이앤 마사롤리는 이날도 남편의 사진이 담긴 배지를 달고 그라운드제로를 찾았다.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마사롤리는 “8월 말이 되면 속이 뒤틀리는 듯한 불안감이 다시 찾아온다”며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완전히 녹초가 된다”고 말했다. 25년 전 여섯 살이었던 아들과 생후 두 달이었던 딸도 이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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