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 美 스타트업, 대형 VC 우선…韓 VC는 LP·코인베로

원재연 기자I 2025.11.06 18:22:41

브리지 비중 16.6%…시드→A 점프 지연
국내 VC, LP로 파이프라인 확보
CVC는 소규모·다건 투자로 동행

[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미국 스타트업 자금 조달이 ‘검증 이후 대형 VC 직행’ 방식으로 고착되면서 국내 VC의 역할이 브리지(확장) 라운드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드 단계에서는 최소 자금만 확보해 PoC(개념검증)와 레퍼런스 고객을 확보하고, 이후 국내·해외 중소 VC보다 실리콘밸리 상위 VC부터 찾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6일 시장조사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 벤처자금의 절반 이상이 상위 10여개 VC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자금이 그로스·메가딜로 쏠리며 시장이 ‘소수 정예’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형 하우스의 리드 여부가 곧 기업가치 평가와 후속 라운드 연계성까지 좌우하면서, 브랜드 VC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시장의 공공연한 공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스타트업 데이터 플랫폼 카르타(Carta)는 브리지(Bridge) 라운드 비중이 2024년 11.8%에서 올해 16.6%까지 확대됐으며, 1분기 시드 딜의 약 46%가 브리지로 집계됐다. 시드 단계에서 A 단계의 점프가 지연되는 흐름이다. 본 라운드로 직행하기보다 실적·고객 레퍼런스를 보강해 더 큰 VC를 노리는 전략이 선호된다는 의미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 VC의 전략도 변화하고 있다. 단독 소싱보다는 현지 VC의 LP(출자자)로 먼저 진입해 파이프라인을 공유받고, 이후 코-인베스트(Co-invest)로 따라붙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서 독립 리드를 시도하기보다는, 검증 이후 단계에서 신호효과를 높이기 위한 동행 전략을 택한다는 설명이다.

한국벤처투자(KVIC)의 해외 VC 출자 프로그램(FVCIF)도 이 같은 구조를 전제로 설계됐다. 국내 운용사가 현지 VC 펀드에 LP로 참여하면, 해당 펀드가 확보한 투자 파이프라인·딜 검토 정보를 공유받고 이후 공동투자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단독 소싱이 어려운 해외 시장에서 네트워크·정합적 심사 체계·후속 라운드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통로라는 평가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CVC의 해외 딜에서도 확인된다. SK스퀘어는 올해 미국 AI 반도체 기업 디매트릭스(d-Matrix), 메모리 기반 AI 연산 스타트업 테트라멤(TetraMem) 등에 소규모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두 회사 모두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AI 연산 기술을 개발 중인 곳으로, 이미 북미 클라우드·팹리스 업체들과 기술 협력 또는 평가 단계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드 단계가 아닌, PoC와 초기 고객 레퍼런스를 확보해 성장 방향성이 잡힌 구간에서 투자가 이뤄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외에도 일본 반도체 패키징 기업 링크어스(LINK-US), 광통신 모듈 기업 에이아이오코어(AIOCORE), 유기발광소재 개발사 큘럭스(Kyulux) 등도 유사 시기 포트폴리오에 편입됐다. SK스퀘어는 건당 100억원 미만, 지분 3~4% 수준의 소수 지분으로 접근해 현지 VC와의 파이프라인 공유 및 후속 라운드 동행 여지를 확보하는 전략을 취했다. 업계에서는 대형 VC와 고객사가 이미 검증을 거친 기업을 중심으로 국내 자본이 브리지·팔로우온 구간에서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는 당분간 한국 VC의 브리지로서의 역할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PoC 재현성, 레퍼런스 고객의 질, 후속 리드 가능성 등 검증 이후의 핵심 지표를 정확히 평가하고, 현지 VC와의 공동 심사·사전 검토 채널을 확보하는 역량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국내 VC 관계자는 “미국 스타트업 입장에선 시차·언어·주주 커뮤니케이션 부담이 큰 데다 한국 VC가 제공할 수 있는 티켓 사이즈가 작아 초기 단계에서 굳이 선택할 유인이 크지 않다”며“대신 최근에는 시드 단계에서 최소 자금을 확보해 PoC와 레퍼런스를 쌓은 뒤, 방향성이 자리 잡은 시점에 다시 투자 검토를 요청하며 한국 VC가 ‘검증 이후’ 브리지 자금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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