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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5월 CPI 4.2%로 2023년 이후 최고…근원물가는 예상 하회(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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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 기자I 2026.06.10 21:53:51

이란 전쟁 여파에 에너지 가격 23.5% 급등
근원 CPI 전월비 0.2% 상승…시장 예상치 밑돌아
실질임금 0.7% 감소…가계 부담·연준 고민 커져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4%대를 넘어섰다. 이란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이 에너지 가격을 밀어 올리면서 전체 물가 상승률은 202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 상승률은 시장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인플레이션이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는 다소 완화됐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식료품점에서 한 소비자가 장을 보고 있다. (사진=AFP)
미 노동부는 10일(현지시간)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4월의 3.8%보다 상승폭이 확대된 것으로 202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0.5%로 시장 전망치와 일치했다.

반면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정책 판단 과정에서 중요하게 보는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2% 상승하는 데 그쳤다. 시장 예상치는 0.3%였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2.9%를 기록해 시장 전망과 부합했다.

시장에서는 헤드라인 물가 상승률이 예상대로 높게 나왔지만 근원 물가가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물가 상승은 사실상 에너지 가격이 주도했다. 5월 에너지 가격은 전월 대비 3.9% 상승했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23.5% 급등했다. 노동부는 전체 CPI 상승분의 60% 이상이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휘발유 가격은 전월 대비 7.0% 상승했다. 계절조정 전 기준으로는 8.6% 올랐다.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5% 급등했다. 이란 전쟁 이후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한 영향이 미국 소비자 물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식료품 가격 상승세는 비교적 제한적이었다. 식료품 가격은 전월 대비 0.1% 상승했고 전체 식품 가격 상승률은 0.2%에 머물렀다. 외식 물가는 0.3% 상승했다. 커피와 차 등을 포함한 비알코올 음료 가격은 0.6%, 곡물 및 제과류 가격은 0.4% 각각 올랐다. 과일·채소 가격도 0.2% 상승했다.

반면 유제품 가격은 0.6% 하락했고 치즈 가격은 2.9% 떨어졌다. 육류·가금류·생선·계란 가격도 전월 대비 0.2% 하락했다. 전년 기준으로는 식품 가격이 3.1% 상승했으며 과일·채소 가격은 6.1%, 외식 물가는 3.5% 올랐다.

시장 참가자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근원 물가의 세부 내용이었다. 최근 월가에서는 유가 상승이 서비스 물가와 임금 상승으로 번지면서 광범위한 인플레이션 재가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 왔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에서는 아직 그러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운송서비스 가격과 건강보험료, 신차 가격이 하락했고 자동차 보험료도 전월 대비 1.7% 떨어졌다. 가정용 가구와 생활용품 가격 역시 0.6% 하락했다. 반면 주거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주거비는 전월 대비 0.3% 상승했으며 임대료는 0.4%, 자가주택 임대료 환산지수(OER)는 0.3% 각각 올랐다. 호텔 등 숙박비도 0.4% 상승했다.

서비스 부문에서는 항공요금이 2.7%, 통신비가 1.3% 상승했다. 의료서비스 가격도 0.3% 올랐다. 병원 서비스 비용은 0.7% 상승한 반면 처방약 가격은 0.9% 하락했다.

시장은 예상보다 낮은 근원 물가에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CPI 발표 직후 미국 국채금리는 장 초반 상승폭을 일부 반납했고 달러화도 약세를 나타냈다. 2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4.12% 부근에서 보합권 움직임을 보였고 S&P500 선물은 낙폭을 줄였다. 톰 디 갈로마 미슐러파이낸셜그룹 전무는 “이란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CPI가 더 강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됐었다”며 “채권시장 반응은 상당 부분 숏커버링(공매도 포지션 청산)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몰리 브룩스 TD증권 미국 금리전략가는 “시장은 에너지 충격을 ‘발생 여부’가 아니라 ‘언제 반영될 것인가의 문제’로 보고 있다”며 “연준 금리 전망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은 유가 상승의 파급효과가 향후 물가 지표에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팀 우르바노비치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팀 우르바노비치는 “물가 상승률이 높아졌지만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과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지출 법안인 ‘빅 뷰티풀 빌(Big Beautiful Bill)’, 그리고 연준 금리 인하의 시차 효과가 여전히 경제를 지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제학자들은 안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보고 있다. 이란 전쟁이 조기에 마무리되더라도 이미 발생한 공급망 충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비료 공급 차질은 향후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운송비 상승은 소비재 전반의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에너지 가격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연준이 올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다시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가계가 체감하는 경제 상황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이날 함께 발표된 실질임금 통계에 따르면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시간당 평균 실질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0.7% 감소했다. 이는 3년여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명목임금은 오르고 있지만 물가 상승 속도가 더 빠르면서 실제 구매력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휘발유와 주거비 등 필수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는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이미 미국 소비자심리는 사상 최저 수준 부근까지 떨어진 상태다. 물가 상승과 실질임금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가계 예산에 대한 압박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정치적으로도 이번 물가 지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경제 성과를 핵심 정치 자산으로 활용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물가 상승과 생활비 부담 확대, 중동 전쟁 장기화 우려 속에 경제 정책 지지율이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 전월대비 상승률 추이 (그래픽=트레이딩 이코노믹스)
시장의 관심은 이제 향후 몇 달 동안의 물가 흐름으로 옮겨가고 있다. 5월 CPI는 유가 급등 충격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첫 지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향후 국제유가가 안정될 경우 물가 상승세도 점차 완화될 수 있지만,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 서비스와 식료품 가격으로 확산하면서 연준의 금리 정책과 금융시장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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