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국민연금은 이미 주식 포트폴리오 기준 자국 주식 편향이 강한 편으로 평가된다. 이번 결정으로 국내주식 보유 여력이 커지면서 기금 수익률이 한국 경기와 국내 증시 흐름에 더 크게 좌우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다. 국내 증시가 하락할 경우 평가액이 낮아져 국민연금의 매수 여력이 커지는 만큼, 사실상 하락장 방어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주식 14.9%→20.8%로 상향…수백조 매도 부담 덜었지만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날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2026년도 자산군별 목표비중 현실화 방안과 2027~2031년 중기자산배분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번 안에는 2026년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5.9%포인트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중기자산배분은 향후 5년간 기금 운용의 기준이 되는 자산군별 목표비중과 운용 방향을 정하는 절차다. 다만 이번 결정은 2027~2031년 중기자산배분안과 함께, 2026년 자산군별 목표비중을 먼저 현실화한 점이 특징이다. 기금위는 2026년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높이고, 리밸런싱 유예가 종료되는 6월 말부터 이를 적용하기로 했다. 2027년도 국내주식 목표비중도 2026년 현실화된 비중인 20.8%로 유지됐다. 시장에서는 국내 증시 급등으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실제비중이 기존 목표비중과 크게 벌어지자, 매도를 통해 비중을 낮추기보다 목표비중을 현실화해 리밸런싱 부담과 시장 충격을 완화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주식 목표비중 조정에 따라 다른 자산군 목표비중도 함께 바뀐다. 현실화된 2026년 말 기준 목표비중은 국내주식 20.8%, 해외주식 34.7%, 국내채권 23.1%, 해외채권 7.4%, 대체투자 14.0%다. 기존 올해 자산별 목표비중은 국내주식 14.9%, 해외주식 37.2%, 국내채권 24.9%, 해외채권 8.0%, 대체투자 15.0%였다.
2027~2031년 중기자산배분안에서는 해외투자와 대체투자 확대 기조가 유지됐다. 다만 2031년 말 기준 세부 자산군별 목표비중은 공개하지 않았다. 기금위는 국민연금법 제103조의2에 따라 기금운용 업무의 공정한 수행과 금융시장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세부 목표비중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공개된 큰 틀의 목표비중은 2031년 말 기준 주식 55% 내외, 채권 30% 내외, 대체투자 15% 내외다.
2027년도 자산군별 목표비중은 국내주식 20.8%, 해외주식 35.6%, 국내채권 21.8%, 해외채권 7.4%, 대체투자 14.3%로 결정됐다. 국내주식 목표비중은 2026년 현실화된 비중을 그대로 유지했다. 기금위는 최근 국내주식 시장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주식의 SAA 허용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 조정하기로 했다. 다만 SAA 허용범위는 기금운용 업무의 공정한 수행과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어느 수준까지 기계적 리밸런싱 없이 보유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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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매도 부담 앞에 원칙 한 수 접었다
이번 자산배분안은 국내 증시 상승으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실제 보유비중이 기존 허용범위를 크게 웃돌면서 대규모 매도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결정됐다. 시장에서는 최근 주가 상승으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보유비중이 28~30% 안팎까지 올라선 것으로 추정한다. 기존 목표비중 14.9%에 전략적자산배분(SAA)과 전술적자산배분(TAA) 허용범위를 더한 상단이 19.9%였던 점을 감안하면, 원칙적으로는 상당 규모의 리밸런싱 매도 부담이 발생한 셈이다.
국내주식 초과분을 기존 기준에 맞춰 단기간에 줄일 경우 시장 충격도 불가피했다. 기존 목표비중을 기준으로 할 때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매도 물량이 250조원 안팎까지 거론됐다. 국민연금은 지난 1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한시적으로 리밸런싱을 유예한 상태였다. 이번 목표비중 상향으로 당장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대규모 매도 우려는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됐다.
국내주식 목표비중 상향 결정은 단기적으로 국내 증시 수급에는 긍정적이다. 목표비중이 높아지면 현재 초과 보유분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국민연금이 시장에서 국내주식을 급격히 매도해야 하는 부담도 완화된다. 국내 증시 수급 불안과 투자심리 위축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국민연금의 매매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기존에는 국내주식 비중이 목표치와 허용범위를 크게 초과해 매도 압력이 컸으나, 새 기준에서는 국내 증시가 충격을 받아 하락하는 경우 평가액이 낮아져 목표비중을 맞추기 위한 매수 여력이 생긴다. 주가 조정 국면에서 국민연금의 매입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주식이 지금보다 떨어질 경우 오히려 국민연금이 더 살 수 있는 여력이 만들어지는 구조”다 “하락장에서는 국민연금의 매수 압력이 커질 수 있어 사실상 하락분을 방어하는 역할로 읽힐 수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 한국증시 편향 이미 강한데…노출 부담 더 커져
문제는 이번 국내주식 목표비중 상향이 국민연금의 자국 편향 논란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목표비중을 높이면 단기적으로 리밸런싱 부담은 줄어든다. 그러나 국내주식 비중이 높아질수록 국민연금 포트폴리오는 한국 경제와 국내 증시 흐름에 더 깊게 연동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장기 기금인 만큼, 특정 국가와 특정 시장에 대한 노출이 과도해질 경우 장기 수익률과 위험분산 측면에서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25년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의 자국 주식 편향이 강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24년 8월 기준 주식 부문에서 자국 주식투자 비중이 27.9%로, MSCI ACWI IM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전세계 투자 가능 주식지수) 내 한국 비중 1.3%를 크게 웃돌았다. 국민연금이 글로벌 주식시장 내 한국 비중보다 한국 주식을 상대적으로 많이 담고 있다는 의미다. 이 지수는 글로벌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전세계 주식시장 내 국가별 비중을 비교하고 자국 편향 수준을 점검할 때 참고하는 대표 벤치마크로 활용된다.
일본 GPIF도 자국 주식투자 비중이 49.3%로 벤치마크 내 일본 비중 6.1%를 크게 상회해 자국 편향이 강한 사례로 분류됐다. 반면 캐나다 CPPI는 자국 주식투자 비중이 9.0%로 벤치마크 내 캐나다 비중 2.8%와의 괴리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미국 CalPERS도 자국 주식투자 비중이 68.6%로 벤치마크 내 미국 비중 62.6%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자국 편향이 약한 편으로 평가됐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민연금처럼 초대형 기금에서 유의미한 자국 편향이 존재하면 포트폴리오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봤다. 국내자산을 별도 자산군으로 분류하고 최소 투자비중을 두는 구조가 자국 편향을 만들고, 그 결과 국민연금 수익률이 국내 경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적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주식 비중이 높아지면서 향후 대규모 매도 과정에서 시장 가격에 미칠 부담도 크게 늘게 됐다. 국민연금은 현재까지 기금이 쌓이는 과정에서 국내 증시의 장기 매수자 역할을 해왔지만, 연금 지급이 본격화하면 보유자산을 현금화해야 한다. 주가 상승으로 기금 평가액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연금 지급 재원으로 활용하려면 결국 매각을 통해 현금화해야 한다.
이번 상향이 현실적인 측면은 있다. 기존 목표비중과 실제 보유비중의 괴리가 큰 상황에서 초과분을 단기간에 해소하려 하면 증시 수급에 충격을 줄 수 있고, 상승장에서 보유자산을 서둘러 줄이는 데 따른 기회비용도 발생할 수 있다. 다만 목표비중 상향이 반복될 경우 국민연금이 사실상 국내 증시의 안전판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은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국내주식 초과분을 단기간에 줄이면 시장 충격이 큰 만큼 이번 상향의 현실적 배경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장기적으로는 분산투자 원칙이 중요한데,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국민연금은 사실상 국내 증시 방어수단으로 굳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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