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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전 표결 정보 공개, 주주 권리 보호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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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I 2026.08.11 16: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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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정기주주총회의 화두는 주주 환원과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주주들은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연대와 함께, 기관투자자 수준의 재무 분석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ROE(자기자본이익률)와 PBR(주가순자산비율)을 비교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요구했다. 또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 후보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수주주의 적극적 참여와 구체적 요구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과 상법 개정이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적 의지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등의 법적 변화는, 소수주주가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집중투표제 역시 소수주주 권리 보호를 위해 도입된 제도다. 상법 제382조의2는 소수주주가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에게 집중시켜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와 현실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특히 전자투표와 외국인 주주의 상임대리인을 통한 의결권 행사가 일반화된 오늘날의 주주총회 실무에서는, 집중투표제가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작동할 위험도 있다.

집중투표제에서는 표의 배분 전략이 승부를 가른다. 선임할 이사의 수가 정해지면, 의결권을 어떤 후보에게 몇 표씩 나누어 행사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주주들의 표가 어느 후보에게 어떻게 분산되는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이는 결정적인 전략적 우위가 된다.

현행 제도와 실무를 보면, 회사는 주주총회 전날 오후 5시에 전자투표 결과를 한국예탁결제원으로부터 전달받고, 대부분 국내 상임대리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외국인 주주의 표결 결과 역시 주주총회일 5영업일 전에 전달받는다. 즉 회사를 지배하는 대주주 측은 사실상 사전 표결 정보를 독점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반면, 소수주주 측은 이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은 집중투표제 아래에서 더욱 큰 문제를 낳는다. 회사, 즉 지배주주와 경영진 측은 사전 표결 집계 결과를 토대로 총회일에 후보별로 표를 전략적으로 배분할 수 있어 일반주주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ACGA(아시아 기업지배구조협회)의 2025년 9월9일자 칼럼(Korea moves forward on governance reform)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전자투표는 2010년 도입 이후 점진적으로 활용이 늘어 2026년 행사율은 역대 최고치인 13.6%에 이르렀다. 이처럼 전자투표 참여 주주가 늘수록 지배주주 측은 다른 주주의 표결 결과를 더 많이 파악하여 유리하게 표를 배분할 수 있는 반면, 현장에 출석한 소수주주는 그 결과를 알지 못해 의결권이 사표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주주총회는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의 근간이다. 모든 주주는 총회에서 평등한 지위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의사는 공정하게 집계·반영되어야 한다. 특정 주주 측만 사전 표결 결과에 접근할 수 있다면 총회 절차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집중투표제 하에서 지배주주 측만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구조는 소수주주 보호라는 제도의 취지와도 어긋난다.

이처럼 절차적 공정성이 의심되는 결의는 법적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외국인 투자자를 포함한 시장 참여자의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개별 회사의 자율에 맡길 것이 아니라, 입법적·제도적 차원에서 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행 상법 시행령 제13조 제5호는 전자투표 결과의 누설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 내부의 정보 공유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규정만으로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회사 측만 사전 표결 결과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상법 또는 자본시장법에 사전 표결 정보(전자투표 및 전자등록기관을 통한 외국인 주주의 의결권 행사 등 관련 정보) 공개 의무를 명문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총회 전일 동일한 시점에 모든 주주에게 정보를 동등하게 제공함으로써 정보 접근의 불균형을 줄여야 한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제도적 수단이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가 구조적 정보 비대칭에 의해 왜곡된다면, 그 제도는 오히려 불공정한 결과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주주총회 절차의 공정성 확보는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성과 지속 가능한 기업 거버넌스를 위한 사회적 과제다.

2차 상법 개정에 따라 2026년 9월 10일부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된다. 늦어도 2027년 정기주주총회부터는 대규모 상장회사의 이사 선임은 모두 집중투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제도가 전면 확대된 뒤에야 구조적 허점을 보완하려 한다면 그 사이 누적된 불공정을 되돌리기 어렵다. 입법자와 규제 당국은 의무화 시행 이전에 사전 표결 정보의 형평성을 확보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도의 외연을 넓히는 것만큼, 그것이 공정하게 작동할 환경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입법의 책무다.

원혜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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