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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산 이미 실험단계 넘어…은행 기능 그대로, 역할은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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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I 2026.10.23 17: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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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신한은행 디지털자산셀장, 금융결제원 세미나 발표
"금융시장 멀티머니 구조로, 고객이 자연스럽게 쓰도록 하는 게 화두"
"디지털자산 실험단계 넘어 성장, 돈과 자산을 움직이는 단계로"
"은행 기능 그대로, 역할은 확장…고객 니즈 파악 역량 키워야"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디지털자산은 이미 실험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성장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디지털자산 시대에 은행이 가진 예금·대출·외환·지급결제라는 근본적인 기능은 변하지 않겠지만, 역할은 확장될 겁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은 고객 니즈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할 겁니다.”

김병희 신한은행 디지털자산셀장 (사진= 이정훈 기자)
김병희 신한은행 디지털자산셀장 (사진= 이정훈 기자)
김병희 신한은행 디지털자산셀장은 금융결제원이 23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비욘드 오픈: 디지털금융의 다음 여정’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페이먼트 인사이트 세미나에서 ‘디지털자산과 금융산업의 미래: 가치 이동의 재편’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지난 2017년부터 신한은행에서 블록체인·디지털자산 신사업을 맡아 온 그는 “인공지능(AI)은 가치를 만드는 방식을, 디지털자산은 가치를 옮기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전제한 뒤 “두 기술이 경제활동의 시간차를 줄여 가치 순환을 빠르게 만들고 있는 만큼 금융이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셀장은 “경제에서 가치가 만들어지는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아시아 6개국 수출 자료를 인용해 “2024년부터 테크와 비테크 수출의 기울기가 확연히 갈렸다”고 했다. 2025년 9월 기준 12개월 누적으로 테크 수출이 전년대비 16% 늘어난 반면, 비테크는 5%대에 머물렀다는 설명이다. 자동차·조선·건설이 이끌던 아시아 성장의 무게중심이 반도체와 AI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국내 지표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3.8% 성장했지만, 교역조건 개선이 반영된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13.2% 늘었다. 두 지표 간 격차는 196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그는 “GDI가 13% 넘게 늘었다면 개인들의 계좌 잔고도 최소 10%는 늘어야 정상 아니냐”고 질문하며 “경제 전체 소득은 늘었지만 그 과실이 같은 속도로 퍼지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AI가 일자리 구조에 미치는 영향도 짚었다. 그는 한은 자료를 인용해 “최근 4년간 29세 이하 청년층 일자리가 28만5000개 줄었고, 그중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나타났다”고 소개한 뒤 “이것만으로 AI가 청년 일자리를 줄였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선배는 AI로 직접 조사하고 신입도 AI로 결과물을 내면서 일을 배우는 경력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며 “AI는 일자리 숫자뿐 아니라 사람이 일에 진입하고 성장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셀장은 금융시장이 현금·예금·전자화폐 위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토큰화 예금·스테이블코인이 더해지는 ‘멀티머니’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어느 하나가 나머지를 대체하기보다 각자 역할을 갖고 공존할 가능성이 크다”며 “금융회사로서는 서로 다른 돈을 어떻게 연결해 고객이 자연스럽게 쓰게 할지가 화두”라고 했다.

“은행도 비트코인을 갖게 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그는 디지털자산을 두 층으로 나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토큰화 채권·펀드·주식·실물연계자산(RWA)과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이 속한 ‘자산 레이어’가 있고, CBDC·예금토큰·스테이블코인처럼 대금을 지급하고 거래를 완결하는 ‘정산(세틀먼트) 레이어’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 사례도 들었다. 독일 지멘스는 국가별로 자금이 남거나 모자라 계좌와 캐시풀이 늘어나는 문제를 풀기 위해 2021년부터 조건이 맞으면 자금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재무 운영에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예금 계좌와 캐시풀을 50% 이상 줄였다. 그는 “송금이 몇 초 빨라진 게 아니라 돈을 관리하는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브라질의 한 무역 외환 플랫폼이 기존 스위프트(SWIFT)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거래에만 USDC 레일을 하나 더 깐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기존 금융을 유지하면서 정산 레이어를 필요한 곳에 하나 더 넣는 것이 당분간 기업의 현실적인 디지털자산 활용법”이라고 말했다.

김 셀장은 디지털자산이 이미 실험 단계를 넘어섰다고 봤다. 그는 비자의 스테이블코인 결제·정산 규모가 연환산 200억달러를 넘어 1년 새 8배 이상 늘었고, JP모건의 블록체인 결제망 키넥시스(Kinexys) 누적 처리액이 4조달러를 넘어 하루 평균 약 70억달러 규모가 됐다고 소개했다.

그가 가장 주목한 곳은 자본시장이다. 미국 금융 인프라 기업 브로드리지의 분산원장 레포 플랫폼(DLR)은 지난 8월 하루 평균 3510억달러, 월간 7조4000억달러의 레포 거래를 처리했다. 그는 “이 정도면 더 이상 작은 시장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디지털자산이 토큰을 발행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돈과 자산을 움직이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토큰화의 본질도 다시 정의했다. 그는 “토큰화의 본질은 금융상품을 디지털화하는 게 아니라 거래와 지급, 정산 사이의 시간차를 줄이는 데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하던 것을 지금 하고, 따로 하던 것을 같이 하고, 순서대로 하던 것을 동시에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 해외로 100만달러를 보낼 때 지금은 은행, 환율, 수수료, 당일 처리 여부를 사람이 하나하나 판단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내비게이션이 국도와 고속도로를 골라주듯 금액·시간·환율·수수료·유동성 조건에 따라 은행 송금이든 스테이블코인이든 가장 적합한 돈과 경로가 자동으로 선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변화가 자리 잡기 위한 조건으로는 △역할과 책임의 재정의 △연결 △신뢰를 꼽았다. 미국이 2025년 7월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제정했고 국내에서도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법안 발의가 예상되는 만큼, 제도화가 시장 참여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정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앞으로는 토큰화 자산과 새 지급망 등 연결할 것이 더 많아진다”고 했다.

신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신한은행 계좌의 1원과 우리은행 계좌의 1원이 같은 돈이듯, 예금 1원과 예금토큰 1원, 원화 스테이블코인 1원도 고객에게 똑같은 1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권의 숙제는 새 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형태의 돈을 같은 신뢰 안에서 연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김 셀장은 디지털자산 시대 은행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예금·대출·외환·지급결제라는 은행의 근본 기능은 변하지 않는다”며 “기존의 역할이 변한다기보다는 역할이 확장된다는 측면에서 생각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객이 돈을 요청할 때 어느 네트워크에서 어떤 형태의 돈으로 줄지 판단하는 등 지급결제가 더 정교해지고, 대출에서는 토큰화 자산이 생기면서 담보를 평가·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이 가장 먼저 키워야 할 역량으로는 고객 니즈 파악을 꼽았다. 그는 “기업 고객에게 ‘스테이블코인 월렛이 새로 생겼으니 써 달라’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신 “기존에 못 하던 24시간 송금과 최적화된 환전·자산관리를 제공하겠다고 다가가야 한다”며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파악해 새 금융서비스를 빨리 만들 수 있는 역량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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