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평양공동선언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정상화’가 명시되자 현대그룹, 개성공단입주기업들은 반색했다. 구체적인 재개 시기가 언급되진 않았지만 선언 문구에 포함된 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19일 논평을 내고 “‘봄이 온다’고 했던 4·27 판문점선언에 이어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 평양공동선언으로 ‘진짜 가을이 왔다’로 나아간 것에 대해 크게 환영한다”며 “남북 평화번영의 상징인 개성공단도 조속히 재개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이날 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 큰 성과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개성공단 정상화 소식에 “예상외의 성과”라고 표현하는 기업인들이 많았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정확한 공단 재개 시점은 없었지만 선언문 자체에 개성공단 정상화가 명시된 것은 의미가 있다”며 “철도·도로연결 착공식이 연내 진행된다고 하니, 개성공단 재가동도 올해 안에 공식화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번 공동선언에서 개성공단 정상화가 언급된만큼 향후 입주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질 전망이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이 설비 점검이다. 협회는 추석 이후 방북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협회는 2016년 2월 공단 중단 이후 지금까지 6차례 방북신청을 했지만 모두 보류됐다. 하지만 이번 회담으로 분위기가 바뀐만큼 방북승인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협회 측은 보고 있다. 더불어 통일부 등 정부와의 교감도 더 밀접하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개성공단 정상화가 본격화된다면, 실제 공장 가동이 재개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우선 전기, 수도 공급 등 개성공단 인프라 점검 등에 2~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협회 관계자는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개소된 남북연락공동사무소를 보니 배전 방식으로 전기가 공급되는데 공단내까지 전기가 들어가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전기 등 인프라가 정상화된 이후에는 개별 공장들의 가동 재개가 이뤄져야 한다. 이 경우 최소 2개월에서 3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당장 자본력이 있거나 일감을 확보한 업체들의 경우 공장 가동 재개 시기가 빠를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수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 원·부자재 확보, 바이어 유치 등에서도 시일이 걸릴 수 있어 개별 공장들의 재개시점은 아직까지 정확히 예측되지 않는다.
한편 중소기업계도 환영의 입장을 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특히 연내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 개최,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조기 재개 노력, 서해경제공동특구 등을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하기로 한 것은 향후 경제협력 활성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며 “중소기업들이 다양한 남북경제협력사업을 추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이번 3차 회담에 동행한 17인의 재계인사 가운데 가장 큰 성과를 올린 경제인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라는 조건부 단서가 붙긴 했지만 9·19 평양공동선언을 계기로 10년간 중단됐던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남북 경협을 포기하지 않았던 현대의 끈기가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 사업 정상화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현대그룹은 이날 입장자료를 내고 “남북 정상의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정상화라는 담대한 결정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면서도 “사업 정상화를 위한 환경이 조속하게 마련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룹 내 대북사업을 전담해온 현대아산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에 필요한 준비 기간은 약 3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봤다. 이제희 현대아산 부장은 “북측 내 호텔 및 관련 시설의 노후화 정도를 살피고, 도로 등 점검을 통해 개보수를 거치면 약 3개월이 걸린다. 시뮬레이션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전기 수도는 물론, 숙박시설, 40~45인승 버스 점검은 물론 안전, 관광코스 등을 둘러봐야 한다”면서도 “지난 10년간 흔들림 없는 의지와 확신으로 준비해왔다. 바로 진행할 수 있는 남북경협”이라고 자신했다.
현 회장은 대북사업 재개를 위해 지난 5월 그룹 내 남북경협사업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자신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회사를 떠났던 대북사업 전문가들도 복귀시키는 등 현안을 직접 챙기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올해는 현대그룹이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지 20년, 중단된 지 10년을 맞는 해인만큼 의미도 남다르다. 대북사업은 그룹의 숙원이자 아픈 손가락이다. 1998년 6월 정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물꼬를 튼 이래 그해 11월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 개발 등 20여 년간 남북 소통과 경협의 창구 역할을 했다. 하지만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 초병이 쏜 총탄에 의해 숨지면서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전면 중단됐다. 2008년까지 금강산을 다녀간 관광객은 총 195만5951명으로 금강산 관광 연간 최고 매출액은 3018억 2200만원(2007년)을 기록했다.
현대그룹은 북측과 맺은 7대 SOC(사회간접자본) 독점사업권(30년간·2030년 합의)도 갖고 있다. 이 사업권에는 주요 명승지 종합 관광사업(백두산, 묘향산, 칠보산)을 비롯 철도, 통신, 전력, 통천비행장, 금강산물자원 등이 포함돼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등 기존 사업 정상화 뿐 아니라 현대가 보유한 북측 SOC 사업권을 기반으로 중장기적으로 남북경협사업을 확대발전 시키기 위해 철저히 대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설명이다. 경협 재개가 본격화하기 위해선 유엔 결의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먼저 해소돼야 한다. 실제로 현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일희일비하지 말고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릴 때까지 담담하게 준비하자”고 주문한 바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 삼아 차분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는 게 현 회장의 당부”라며 “경협이 구체화될 경우 사업 재개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9월 평양공동선언이 실질적으로 진행되면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