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매장을 운영하는 A업체와 제조업을 영위하는 B업체간 게임으로 보지만 유통산업은 전체 시장의 게임으로 봐야 합니다. 법 적용 자체가 한정적이고 협소해 특정 사업자를 불리하게 만들어 공정경제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을 시대 상황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7일 ICT법경제연구소와 서강대 법학연구소가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마련한 ‘유통산업 혁신을 위한 유통 규제개선’ 세미나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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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를 마련한 홍대식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겸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이데일리와 만나 대규모유통업법을 ‘12년 전에 맞춘 옷’에 비유했다.
홍 이사장은 “대규모유통업법은 공정거래법만으로 현안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만든 특별법인데 문제가 해결됐는가”라며 “시장이 변했는데 법의 틀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홍 이사장이 주목하는 부분은 온·오프라인 유통업체 사이의 불평등한 규제다. 그는 “판매 촉진 비용 50%를 (오프라인) 유통기업이 부담토록 하다보니 판매업자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판촉 행사를 진행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온라인 채널이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했다. 이들이 새 사업모델을 개발하는 데도 제약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까르푸를 비롯한 해외 주요 유통업체가 국내에서 못 버티고 철수하거나 국내 주요 유통업체가 해외에서 선전하지 못하는 배경 역시 우리나라만의 특수 규제 때문이라는 게 홍 이사장의 진단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사업 전략과 모델로 가야 성공한다”며 “국내 유통업체는 규제와 치열한 경쟁에도 살아남았지만 해외에서도 국내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하다 보니 더 많은 비용이 들면서 되레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언급했다.
홍 이사장은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온라인 플랫폼에도 적정한 수준의 규제를 적용한다면서도 과도한 규제를 경계했다. 앞서 정부는 제2의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 국내 매출액 100억원 이상이거나 판매액 1000억원 이상인 온라인 중개 거래 사업자를 대상으로 20일 이내 정산, 판매대금 별도 관리 등을 제한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는 “해수욕장에 상어가 나타났다고 해수욕장 문을 닫는 게 맞는가”라면서 티메프 사태를 ‘상어’에 빗대었다. 이어 “남용 여지를 차단하려 최소한의 규제를 신설해야 한다”면서도 “기업의 정상적인 사업을 어렵게 할 정도로 과도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보호 아닌 상호 보완에 초점”
이날 세미나에서도 대규모유통업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플랫폼법정책학회장인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유통업법은 대규모 유통업자와 납품업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 보완 기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 납품업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판촉비 규제와 관련해 최난설헌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유통업법 규제가 엄격해질수록 유통업체는 자사 상품 위주로 공격적으로 프로모션함으로써 납품업체는 판촉 기회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판촉비 전가를 규제해야 한다”면서도 “소규모 사업자엔 판촉 기회를 택할 수 있도록 하고, 대규모 납품업자엔 현실을 고려한 판촉비 분담안이 제안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백화점 1층에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이 전혀 없다면, 대형마트에 유명한 라면회사 제품이 납품되지 않는다면 제조사와 유통업체 누가 더 불리한가”라며 유통업체가 ‘갑’ 위치에 있지 않음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남동일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생산자와 소비자 등 전통적 경계가 무너지고 제조업체가 직접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판매하는 방식도 확산하는 전환의 시기”라며 “현행법이 지금의 유통거래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있는지 학계 전문가 등과 지속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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