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 배급·휴교·재택근무…마른수건 쥐어짜는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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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6.03.11 18:18:29

이란발 에너지 위기 직격탄
필리핀, 주 4일제·공공 전력 제한
방글라데시, 휴교령·연료 배급
파키스탄, 공공 근무일 50% 감축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긴급 대응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근무일 단축, 원격(재택)근무 확대, 휴교령, 연료 배급제 등 국가별로 대응책도 다양하다. 유럽은 아직까진 국가 단위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위기가 심화하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와 비슷한 조처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

10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의 한 주유소에서 오토바이와 차량 운전자들이 주유하기 위해 줄서 있는 모습. (사진=AFP)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 긴급 대응 조치 잇따라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이후 베트남은 일부 석유제품 수입 관세를 인하하고 아직 수출 계약을 확정하지 않은 원유는 국내 정유공장에 우선 판매하도록 했다. 필요시엔 유통업자들이 보유한 비축유와 국가비축유 방출을 통해 시장 공급 공백을 메우도록 했다. 베트남 민간항공당국은 이르면 4월 초부터 항공유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전 세계 석유·가스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며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 차원에서 긴급 대응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연료 수입 안정성 확보, 직접적인 에너지 절약 캠페인, 국내 가스·연료 사용의 효율적 배분 등 다양한 수요관리 조치를 잇달아 발표했다.

중국은 정유사들에 휘발유·디젤 등 연료 수출을 중단하고 이미 계약된 물량도 가능하면 취소토록 권고했다. 사실상 강제 명령 조치로 내수 공급을 우선해 가격 급등을 억제하려는 대응이다. 중국은 비축유 78일분을 확보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회원국에 최소 ‘순수입량 기준 90일분’ 비축유를 확보하라고 권고한다.

석유를 거의 전량 수입하는 필리핀은 이미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한시 시행하고 있으며 정부 청사 엘리베이터 사용을 제한하고 에어컨 온도를 섭씨 24도 이상으로 유지토록 했다. 필리핀 정부는 또 대중교통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와 기업들은 미주·호주·아프리카 등지에서 원유를 조달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5%에 달하는 방글라데시 역시 전국 모든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주유소 일일 판매량을 제한하고 있다. 초·중·고교는 라마단으로 이미 휴교 상태다. 방글라데시는 또 정전 사태를 피하려고 비필수 산업에서 일부 공업용 가스를 발전소로 돌려보내도록 했으며, 불필요한 조명·냉방기기 사용 자제 지침을 내렸다.

태국은 각 부처와 기관에 재택근무 도입과 비필수적인 해외 출장 중단을 지시하고 5월까지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을 동결했다. 군부 정권이 통치 중인 미얀마에서는 연료 공급 불안이 확산하며 주유소마다 긴 줄이 이어지고 있다.

파키스탄도 휴교령과 함께 공공·민간 부문 모두 직원의 50%를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정부 부처 근무일을 주 4일로 줄였다. 아울러 앞으로 두 달 동안은 정부 차량에 배정하는 연료 할당량을 50% 감축하고 전체 관용차의 60%를 운행 중단키로 했다. 장관·의원 등 고위직 급여를 줄이거나 지급을 일시 중단하는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비축유가 28일 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아시아 국가들은 석유·가스 수입 의존도가 특히 높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부족한 비축량과 마땅치 않은 대체 공급원 사이에서 대응책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며 “일부 국가에선 연료 사재기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위기 심화 시 ‘우크라戰 대응책’ 재도입 가능성

유럽에선 이번 이란발 에너지 위기와 직접 연계된 대규모 절약 정책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다만 2022년 러시아발 가스 위기 당시 이미 다양한 수요관리 조치를 시행한 전례가 있는 만큼, 위기가 심화하면 유사한 방안들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당시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1년 안에 3분의 1 이상 줄이기 위한 10대 행동계획을 제시했다. 난방 온도 1도 인하, 가정·사무실 에너지 효율 개선, 원격근무 확대, 도시 제한속도 하향, 주말 차량 운행 제한 및 자전거·대중교통 이용 확대 등 주로 생활·교통 부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권고안이 담겼다.

이외에도 글로벌 차원에서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비상 석유비축분 공동 방출을 논의하는 등 공급 충격을 막기 위한 공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에너지기업 아람코의 아민 나세르 최고경영자(CEO)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수록 세계 석유 시장에 재앙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지역 석유·가스 산업이 직면한 최대 위기”라고 경고했다.

한편 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국과 일본은 각각 208일분, 254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제조업 규모를 고려하면 많은 게 아니어서 추가 물량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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