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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광복절 경축식이라는 상징성이 높은 자리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언급한 것이어서 의미는 크다. 미국과 북한을 향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작 개성공단 기업들은 이 같은 대통령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덤덤한 모습이다. 지난 1년간 기대감을 갖고 버텨왔지만 아직까지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해선 진전된 게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3년간 방치한 개성공단 내 설비 점검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개성공단 기업들은 설비 점검을 이유로 최근 6번째 방북 신청을 했지만 “여건이 안 됐다”는 이유로 또 다시 거절당했다. 문 대통령의 개성공단 재개 언급에도 기업인들이 예전만큼 기대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다.
16일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까지 확정했지만 개성공단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희망고문’만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1년간 기대감을 갖고 기다렸는데, 최근엔 기업인들 사이에서 ‘이럴거면 아예 공단 사업을 정리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방치된 설비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가고 있다. 아무 것도 기약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희망고문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다. 지난 13일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다음달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는 등 남북관계가 조금씩 진전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지난 1차 정상회담 당시 서울시 여의도 개성공단협회 사무실에 모여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렸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1년간의 희망고문이 점차 실망감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현재 휴업을 결정한 개성공단 기업들은 10개 이상으로 늘었다. 한 개성공단 기업인은 “지금 공단을 재개하더라도 오랜 피해 누적으로 수익성을 맞추기 힘든 상황인데, 기간까지 길어지니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며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고통은 배가 된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누구도 기약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그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정부에서 운영자금 대출을 받은 상황에서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지 못한 채 폐업할 수 없는 것. 또한 개성공단에 남겨둔 자산이 현재 정부가 지원한 피해보상액보다 훨씬 큰 만큼 이를 포기하는 것도 어렵다. 폐업을 하면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남북협력사업자’ 지위가 사라지면서 관련 자산도 수출입은행으로 넘어간다.
비대위는 오는 22일 후속 대책 마련을 위해 비상총회를 열 계획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기업인들끼리 서로의 사정을 토로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손발이 다 잘린 상태에서 대책이 있을 수 없다. 비대위 관계자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 같은 개성공단 기업들의 희망고문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며 “적어도 설비 점검만이라도 하게끔 해주면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텐데, 조금만 배려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