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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의결권 행사를 한미 자유무엽협정(FTA) 제11.1조상 ‘국가기관(당사국)의 조치’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원 중재판정부는 지난 2023년 6월 국정농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정부의 부당한 압력으로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표를 던졌고 이로 인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면서 한국 정부에 약 593억원과 지연이자 등 합계 약 1600억원(2026년 2월 기준)의 배상을 명했다. 엘리엇의 청구금액(1조원 이상) 중 약 7%를 인정한 것이었다.
정부는 곧바로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1심 법원은 “정부가 주장하는 취소 사유는 한미 FTA 해석상 적법한 취소 사유가 아니다”라며 소를 각하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항소에 나선 정부는 2025년 7월 영국 항소법원에서 “취소 사유는 적법하다”는 판단을 이끌어내며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본안 심리를 위한 환송 판결을 받았다. 이어 지난해 12월 환송 1심 변론기일을 거쳐 이날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영국 법원은 우리 정부 주장을 전면 수용해 △국민연금공단은 정부와 별개의 법인격을 보유한 점 △공적연금기금 운용은 치안·국방 등 국가 핵심 기능에 해당하지 않는 점 △국민연금공단의 일상적 의사결정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전제한 원 중재판정 부분을 취소했다.
다만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합병 관련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한 행위는 FTA조항 상 ‘관련성 있는 조치’에 해당한다는 판단도 함께 내놨다. 이에 따라 사건은 청와대·보건복지부의 행위만을 토대로 엘리엇의 손해 인과관계 등을 다시 따져보도록 중재절차로 환송됐다.
이번 승소는 법리적 의미만큼이나 그 과정 자체가 주목받는다. 영국 법원의 중재판정 취소 인용률은 최근 2년간 고작 3%에 불과하다. 정부는 중재 일부 패소, 취소소송 1심 각하라는 두 번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정정신청·취소소송·항소를 잇달아 제기하며 일관된 법리를 고수했다.
불리한 환경도 만만치 않았다. 국내 법원의 국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유죄 확정판결이 ISDS 대응에 걸림돌로 작용했고, 소송비용도 정부보다 약 6배를 쏟아부은 엘리엇의 자금력과 싸워야 했다.
정부는 이번 승소의 의의를 단순한 배상금 절감 이상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등 투자 활동은 ISDS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리를 확립해 국민 노후자금의 독립성을 법적으로 지켜냈기 때문이다. 또 한미 FTA 제11.1조의 ‘관문조항’으로서의 기능을 재확인함으로써 해외 투기자본의 ISDS 남소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의미도 있다.
정부는 이번 판결 이후 과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환송된 중재절차에서 청와대·보건복지부의 행위와 엘리엇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을 다시 다퉈야 하고, 구체적인 취소 범위 및 소송비용 분담 문제도 남아 있다. 엘리엇이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경우에도 대비가 필요하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번 승소는 정부가 법무부를 중심으로 합심하여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영국 법원을 설득한 결과 얻어낸 소중한 승리로 향후 환송 중재절차에서도 최선을 다해 국민과 국익을 지켜내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