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자체보다 늙어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다.
고령화 속도로만 보면 미국보다 4배 빠르고, 독일보다도 2배 넘게 빠르다. 급격한 고령화 탓에 30년 장기 침체를 겪은 일본보다도 1.3배가량 빠른 상황으로, 변화에 대응하고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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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오 하야시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GRIPS) 명예교수는 2일 한국은행이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공동으로 개최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일본이 겪은 경로를 동아시아 국가들이 훨씬 더 압축적인 속도로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고성장을 구가하던 일본 경제가 1990년 이후 연평균 0.5% 수준(0.54%)의 극심한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진 원인으로 인구 고령화를 꼽았다.
흔히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 붕괴와 부실한 금융, 정책 실패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하야시 교수는 다른 선진국보다 30년 먼저 시작된 고령화가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 현장의 고령화가 신기술 도입을 늦추고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면서 결국 국가 전체의 성장률까지 낮췄다는 얘기다.
그는 “과거 일본에서 관찰된 급격한 성장 둔화가 한국,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더욱 무섭게 반복될 수 있다”고 했다. 하야시 교수는 현 추세가 유지된다면 향후 30년 간 고령화 속도는 홍콩·한국·대만·중국·싱가포르 순으로 빠를 것으로 전망했다.
셀라하틴 임로호로글루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한국처럼 고령화가 비교적 늦게 시작된 나라들을 ‘후발 고령국(Late-aging economies)’으로 분류했다.
다만 늦게 늙기 시작했다고 해서 유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늙어가는 시간이 짧은 만큼 연금과 복지제도를 고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독일, 스웨덴 등 유럽의 ‘선발 고령국’들은 수십 년에서 한 세기가량(8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늙어갔기에 연금 제도를 고치고 복지 틀을 짤 시간적 완충 지대가 있었다.
반면, 한국은 젊고 활기찬 상태를 유지하다가 갑작스럽게 절벽 밑으로 떨어지듯 늙어가고 있어 연금·의료·복지 등 재정 부담도 짧은 기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임로호로글루 교수는 인구 저위 추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국의 노년부양비(OADR)는 2024년 29.3%에서 2100년에는 약 200%에 도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하는 청장년 1명이 노인 2명을 등에 업고 가야한다는 얘기다.
또한 그는 지금의 청장년과 노인 인구 비율이 유지될 경우 연금 재정 파탄을 막으려면 2100년까지 은퇴 나이를 최소 20~25세 높여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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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송 한은 총재도 이날 개회사를 통해 “인구구조는 강력한 힘이지만 흔히 말하듯 ‘인구가 곧 운명’인 것은 아니다”라며,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촉구했다.
특히 신 총재는 지금이 개혁에 나설 적기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은 인공지능(AI) 생태계의 중심에 서 있으며 유례없는 반도체 생산과 AI 가 이끄는 투자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지금은 미룰 때가 아니라 대비할 때”라고 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례 없는 수출 호황으로 경기와 재정 등에 여력이 생겼을 때 고령화에 대비한 제도 개혁과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당부로 읽힌다.
임로호로글루 교수는 연금개혁을 구체적인 해법으로 제시했다. 일본이 도입한 ‘거시경제슬라이드’와 같은 장치다. 노인이 늘어나고 연금을 내는 사람이 줄어들 경우 이에 따라 연금 지급액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임로호로글루 교수는 조정이 늦어질수록 급여 삭감이나 보험료 인상 등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고통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공동 콘퍼런스는 이날부터 이틀간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인구 고령화와 장수(長壽)의 경제학: 도전에서 기회로’를 주제로 열린다. 이번 행사에서는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인구 고령화와 초저출산이라는 거대한 인구 구조적 변화를 경제적 위기가 아닌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논의에 집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