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계에 따르면 2001년 국내 통신 3사의 매출은 13조원에서 2025년 60조원으로 약 4배 늘었다. 반면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3조3000억원에서 4조원대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이익은 2조~4조원대 박스권에 머문 셈이다.
문제는 AI 시대에 또다시 대규모 트래픽 증가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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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비용은 통신사가 부담하면서 트래픽 증가가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통신사는 데이터를 전달하는 ‘덤프파이프(Dumb-pipe)’에 머물 수 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17일 고려대학교 기술법정책센터 세미나에서 통신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유럽연합(EU)의 ‘디지털 네트워크법(DNA)’을 새로운 네트워크 정책의 사례로 제시했다.
50조 쏟아부었지만…이익은 제자리
통신업계가 처한 문제는 트래픽이 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트래픽은 계속 증가했지만 이를 수익으로 연결하기 어려웠다는 데 있다.
이 위원은 “네트워크를 포설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수익이 디커플링돼버렸다”며 “미래 기대수익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 투자를 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이동통신 3사는 5G를 비롯한 통신망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누적 설비투자 규모는 약 5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투자한 만큼 수익이 늘지는 않았다. 2001년 13조원이었던 통신 3사의 매출은 2025년 60조원으로 약 4배 증가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3조3000억원에서 4조원대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글로벌 통신사와 비교해도 수익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버라이즌의 5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약 22%, 일본 KDDI는 18% 수준인 반면 국내 통신사의 영업이익률은 7.1% 수준이라는 것이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트래픽이 늘고 망 투자가 커져도 이를 충분한 수익으로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AI가 새로운 트래픽 증가를 만들어내면 통신사의 투자 부담은 다시 커질 수 있다.
AI 시대, 트래픽은 더 많이·더 오래
5G 시대 통신망 트래픽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서비스가 OTT였다.
영상을 스트리밍하면서 대규모 데이터가 통신망을 통해 이용자에게 내려왔다. 트래픽이 늘어나는 방향도 비교적 명확했다. ‘많이 내려받는’ 구조였다.
AI 시대에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생성형 AI는 이용자가 질문을 입력하면 AI가 답변하고, 이용자가 다시 질문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검색처럼 한 번 결과를 확인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올리고 결과를 수정하는 등 네트워크와의 상호작용이 이어진다.
이종관 위원은 “OTT로 인해 발생했던 일방적 다운로드 부하에 이어 AI 시대에는 업로드되는 데이터 자체가 늘어나는 ‘트래픽 폭증 시즌2’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 서비스의 네트워크 점유 시간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위원은 AI 서비스의 “점유 시간이 굉장히 길다”고 지적했다.
AI 에이전트가 확산하면 변화는 더 커질 수 있다. AI가 이용자를 대신해 검색하고 다른 AI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쇼핑·예약·업무 시스템 등 여러 서비스를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직접 클릭하지 않아도 AI가 백그라운드에서 여러 서비스와 데이터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트래픽이 늘어날수록 망 용량과 품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처럼 정액요금 중심의 구조가 유지된다면 트래픽 증가가 추가 수익으로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5G 시대의 ‘트래픽은 늘지만 수익은 따라오지 않는’ 문제가 AI 시대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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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통신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네트워크법(DNA)’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각국으로 쪼개진 통신시장을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것이다.
이 위원은 DNA의 본질을 “개별 국가의 자율성에서 초국가적 단일 시장으로 묶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규모를 키워 유럽 통신사의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빅테크와 협상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DNA에는 한 국가에서 면허를 받으면 EU 전체에서 사업할 수 있도록 하는 ‘싱글 패스포트(Single Passport)’ 제도가 포함된다.
주파수 이용권의 안정성을 높여 통신사의 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방안도 담긴다.
통신사와 빅테크 사이에 망 이용 등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할 경우 규제기관이 개입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한다.
이 위원은 이를 두고 “일방적인 불공정한 상황이 나타나지 않도록 협상력 조정을 할 수 있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트래픽을 차별하지 않는 망중립성 원칙은 유지하되 혁신적인 서비스에 대해서는 별도의 트래픽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특수 서비스’도 제도화한다.
AI 시대, 맞춤형 망·과금 필요
AI 시대에는 통신망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모든 데이터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나 서비스에 필요한 품질과 속도에 따라 네트워크를 차별화할 필요가 생긴다.
특히 자율주행과 로봇 등 피지컬 AI는 안정적인 통신과 초저지연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이 위원은 “6G와 AI 시대에는 기존 5G보다 훨씬 확장된 B2B 시장이 열리게 될 것”이라며 “고도의 정밀성이나 초저지연이 필요한 피지컬 AI 같은 경우 사실상 특수 서비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공장 내 로봇이나 자율주행 시스템처럼 통신 지연이 중요한 서비스라면 일반 소비자용 인터넷과 다른 수준의 네트워크 품질이 필요하다.
통신사에는 이런 서비스가 새로운 수익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데이터를 얼마나 썼느냐’에 따라 요금을 받는 방식에서 벗어나 속도와 안정성, 지연시간 등 네트워크 품질에 따라 비용을 받는 방식이다.
AI가 통신망에 새로운 부담을 주는 동시에 통신사에는 새로운 B2B 시장을 열 수 있다는 의미다.
“인프라 구축 넘어 ‘경쟁 정책’으로”
통신정책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정부 정책은 통신 인프라 확충과 설비투자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망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단순한 투자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과거 인프라 투자를 통해 자본 장비율을 높이는 ‘산업 정책’ 중심의 기조였다면, 네트워크 사업자의 영향력과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는 지금은 (OTT 등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경쟁 정책’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I 시대 통신사의 과제는 더 많은 망을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OTT에서 AI로, AI에서 에이전트와 피지컬 AI로 넘어갈수록 통신망은 더 많이, 더 오래, 더 정교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관건은 늘어나는 트래픽을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하느냐다. 50조원을 들여 망을 구축한 통신사가 AI 시대에도 투자비를 떠안은 채 데이터를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 것인지, 고품질 네트워크를 새로운 AX 플랫폼 사업으로 연결해 트래픽을 수익으로 바꿀 수 있을지가 통신산업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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