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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2차 정상회담이 28일 합의 없이 종료되자, 이날 TV를 지켜보고 있던 현대그룹 직원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회사 A차장은 “이날 오전까지 현장 분위기가 좋아 진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지 않을까 잠시 설렜다”면서 “이틀 꼬박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라고 아쉬워했다.
뚝심 하나로 11년을 기다려온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에 적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10년여간 지속됐던 금강산 관광 재개의 희망고문도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이날 “남북경협 재개 여건이 하루빨리 마련되길 바랄 뿐”이라며 짧은 입장을 밝혔다. 이어 “기대와 희망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금강산관광을 비롯해 남북경협 재개를 위한 준비와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현대그룹을 비롯한 재계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남북경협 관련 재제가 일정 부분 풀리면 대북사업을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그룹은 “계열사인 현대아산이 남북경협 전문 기업인만큼 경협 관련해서는 늘 준비하고 있다”며 “경협이 이뤄지면 어떠한 형태로든지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혀왔다.
실제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언젠가 재개될 대북사업 준비에 만전을 기해왔다. 우선 지난해 말 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 중 340억원을 금강산·개성 시설 개보수와 장비 등 비품 구매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외에도 ‘개성공단 2단계 준비’에 10억원을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현대그룹은 기약 없이 다음 협상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북측 추가 접촉 계획도 불투명하게 됐다. 당초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본 이후에 필요하면 접촉을 진행하기로 했었다.
현대그룹은 늘 그래왔듯 대북사업 재개를 위해 차분히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경협까지는 먼 길이다. 경협 재개가 본격화하기 위해선 유엔 결의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먼저 해소돼야 한다.
현 회장도 임직원들에게 “당장의 회담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릴 때까지 담담하게 준비하자”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사업은 현대그룹의 숙원이다. 그룹 재건의 상징일 뿐 아니라 범(凡)현대가(家)의 본원으로서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업을 잇는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현대그룹은 1998년 6월 정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물꼬를 튼 이래 그해 11월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 개발 등 20여 년간 남북 소통과 경협의 창구 역할을 했다. 금강산과 개성 관광, 개성공단은 물론 7대 대북 사회간접자본(SOC) 독점 사업권도 쥐고 있다. 하지만 2008년엔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그룹의 대북사업이 멈췄다.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인한 매출 손실액을 약 1조5000억 원으로 보고 있다. 10년 간 누적 적자는 2247억 원.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평화생태 관광 프로그램, 해외를 오가는 크루즈 여행, 심지어 탄산수 유통에까지 손을 댔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2008년 1084명이었던 직원 수를 현재 167명으로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