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를 방문해 테러 등 폭력적 극단주의 악순환 해결 방안의 하나로 ‘교육’을 제시했다. 또 향후 한·중·일 동북아 3국의 유네스코 기록문화 등재 경쟁에서 강도 높은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이슬람국가(IS) 가 연쇄 테러를 저지른 현장인 파리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본부에서 프랑스 각계 주요 인사와 파리 주재 외교단, 유네스코 관계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 22분간의 특별연설을 통해 이처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연설 중 모두 7차례에 걸쳐 박수를 받았다.
◇“기록유산 제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박 대통령은 “분쟁지역 어린이들에게 증오가 아닌 화해를, 폭력이 아닌 대화를, 좌절이 아닌 희망을 꿈을 심어주는 일이야말로 오래도록 유지될 평화의 방벽을 세우는 일”이라며 “그 해답이 바로 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 평화의 방벽은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화의 방벽(The defences of peace)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이라는 유네스코 헌장에 나오는 문구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유네스코와 교육 분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Better Life for Girls)’ 구상 협력 △아프리카 국가 직업기술 및 정보통신기술(ICT) 교육 △세계시민교육 커리큘럼 개발을 위한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지원 등을 제안했다. 세계시민교육이란 글로벌 이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 달성에 기여하는 세계시민을 양성하자는 개념으로, 교육을 통해 극단주의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 “지금 어느 나라, 어느 누구도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라며 “특정 국가가 야기하는 지역 불안정과 평화에 대한 위협은 국제사회 전체의 위협 요인이 되고 있고, 북한의 핵개발과 인권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제안한 남북 간 환경·민생·문화의 3대 통로 중 특히 “문화의 통로는 민족 동질성 회복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박 대통령은 “객관적이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 기록유산 제도 논의가 이뤄지도록 유네스코와 함께 노력할 것”이라며 지난 7월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점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더 나아가 “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위원회 사무국 유치를 통한 아카이브 구축 등 세계기록유산제도 발전에 대한 기여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한·중·일 3국이 벌이고 있는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유치전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해 주목됐다.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4번째 만남..MOU 2건 체결
박 대통령은 연설 이후 보코바 사무총장과 접견 및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교육을 중시하고 문화융성 정책을 추진 중인 우리나라와 교육·과학·문화를 통해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하고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자 하는 유네스코는 상호 최적의 협력 파트너”라고 했다. 두 정상의 만남은 2013년 박 대통령의 유럽순방과 지난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창립 60주년 행사, 지난 5월 보코바 사무총장의 인천 세계교육포럼 참석 계기에 이어 네 번째다.
두 정상은 청소년 발달 및 참여를 위한 국제무예센터 설립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택견의 본 고장인 충주에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제무예센터는 전통 무예 연구와 교육을 장려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 전파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정부는 센터에 시설, 예산, 인력을 제공하며, 유네스코는 자체 전략 목표에 따라 전문가를 파견하고 직원교류 등의 지원을 한다. 두 정상은 ‘한·유네스코 자발적 기여에 관한 양해각서(MOU)’에도 서명했다.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박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유네스코로부터 초등 교과서 출판 지원 등을 받았던 우리나라가 이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국제사회 평화와 번영을 위해 유네스코와의 동반자 관계를 확대·강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 대통령의 특별연설 직전 성악가 조수미씨가 ‘아리랑’과 ‘즐거운 나의 집’ 등을 부르며 축하공연을 해 눈길을 끌었다. 조씨는 2003년부터 유네스코 평화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조씨의 공연이 끝나자 감동을 받은 듯 한참 동안 손뼉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