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재판장 오상용)는 15일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고 나병식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등 피해자 11명과 그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5억~8억원 등 총 107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지급된 형사보상금을 일부 공제해 손해배상액수로 인용된 금액은 총 95억원이다.
민청학력 사건은 지난 1974년 격렬해지는 유신 반대운동에 위기를 느낀 박정희정권이 이를 타계하기 위해 조작한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이다. 박정희정권은 지학순 주교 등 재야세력 인사들과 대학생 등 180명을 구속하고 이들의 배경에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다며 관련자들을 구속한 후 재건위 주동자로 지목한 6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나 전 이사 등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후 군사법원에서 징역 5~20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들 중 김효순 전 한겨레신문 편집국장을 제외한 10명은 이듬해 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내외의 비난 여론에 밀려 석방할 때까지 1년 가까이 복역하다 석방됐다. 김 전 국장의 경우만 1978년 8월이 돼서야 나올 수 있었다. 민청학련 관련자들은 2009년부터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재판부는 “국민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이 오히려 가해자가 돼 자유를 박탈한 조직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위법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허위 자백을 강요받거나 고문, 협박, 구타를 당하고 짧게는 약 10개월에서 길게는 4년 4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하며 자유를 박탈당했다”며 “가족들도 주변으로부터 불순세력 가족으로 매도당하며 살아야 했고 오랜 기간 적지 않은 사회적·경제적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1568일을 구금됐던 김 전 국장에게 8억원, 김 전 국장 부모에게 각각 2억원의 위자료를 산정했다. 또 일본 기자의 통역을 하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300일 가까이 구금됐던 일본인 하야카와 요시하루(早川嘉春)씨와 그 가족들에 대해서도 수억 원의 위자료 지급을 판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의 지난 8월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 지급 결정을 재판상 화해 성립으로 보도록 한 조항에 대해 ’정신적 손해‘에 대해선 조정 성립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위헌 결정을 근거로 ”원고 중 일부가 생활지원금과 보상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지급 소송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