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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금융 강조에도 담보 중심 여전, 기업대출 늘었다지만 66%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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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기자I 2026.09.16 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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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쓰는 스페셜리포트] 건전성 규제에 갖힌 K금융
담보 없으면 기술 좋아도 퇴짜
대출 위험성 계산법 새로 짜야

[한재준 인하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김보경 금융전문기자] 은행 직원 앞에 두 건의 대출 신청서가 놓여 있다. 하나는 서울 아파트를 담보로 맡긴 직장인의 주택담보대출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은 있지만 담보가 없는 스타트업의 운전자금 대출이다. 단순하게 2개의 신청서 중 하나만을 골라 대출을 해줘야 한다고 치자. 그럼 은행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

답은 뻔하다. 주택담보대출은 집값과 소득을 확인하면 심사가 끝나고, 문제가 생겨도 담보를 처분해 돈을 회수할 수 있다. 반면 창업기업은 기술과 시장성, 경영자의 능력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실패하면 원금을 건지기 어렵다.

현 정부 들어 생산적 금융이 화두다. 부동산과 담보대출에 쏠린 돈을 미래 생산성이 높은 기업과 산업으로 돌리자는 요구다. 청와대 전직 관료도 얼마전 “건전성이라는 방패 뒤에 구조적 모순을 방치하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와 달리 담보 중심인 부동산 대출에서 미래성장산업인 생산적금융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 금융업계에 따르면 8월말 기준 5대은행(KB은행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은 00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가 늘었지만, 증가분의 70% 가량은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정부의 생산적금융 확대 기조에 맞춰 기업대출을 늘렸지만, 안정적인 대기업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융 제도는 위험을 피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감수할 만한 위험을 골라내고 여러 주체가 나눠 지는 데는 취약하다. 금융의 위험 가격표와 손실 부담 구조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건정성 규제에 대한 부담으로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들이 좀처럼 담보 위주의 대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은행이 기업대출을 취급할 땐 위험가중치(RW)에 따라 자기자본을 쌓아야 하는데, 똑같이 100억원을 빌려줘도 주택담보대출은 위험가중치(하한이 20%)가 낮고, 담보 없는 기업대출이나 투자(하한 50%)는 높다. 기업대출보다 담보가 있는 부동산에 대출 해주는게 훨씬 안전한 만큼 금융의 건전성을 위해 이 같이 차등을 둔 것이다.

충당금도 마찬가지다. 금융사는 부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예상 손실을 비용으로 먼저 반영해야 한다. 이때 담보와 거래 이력이 충분한 대출은 이 부담이 작지만, 창업기업과 저신용자 대출은 처음부터 더 많은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고 건전성 규제를 느슨하게 풀자는 뜻은 아니다. 건전성은 금융의 안전망이다. 1998년 IMF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면 그 비용이 결국 국민 경제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본의 위험을 측정하고, 자금을 배분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즉 아파트 대출은 무조건 안전하고, 담보 없는 기업대출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보는 금융권의 계산법을 바꾸자는 얘기다.

금리가 조금 높더라도 심사·관리 비용과 부실 위험을 빼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 정부가 은행에 “생산적 금융, 포용적 금융을 늘리라”고 주문해도 위험의 가격표가 그대로라면 움직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핵심은 ‘누가 위험을 어떻게 질 것인가’다. 지금의 금융규제는 위험을 피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감수할 만한 위험을 골라내고 여러 주체가 나눠 지는 데는 취약하다. 금융의 위험 가격표와 손실 부담 구조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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