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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전쟁 연장선?…필리핀 상원서 총격전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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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6.05.14 15:03:51

13일 저녁 의사당 복도서 다수 총성…사상자는 없어
두테르테 측근 ICC 체포영장 둘러싸고 농성중 발생
전·현직 대통령 권력투쟁 일환…일각선 자작극 의혹도
중동 위기 속 페소화 약세 등 경제 충격 확산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필리핀 의회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 집행 책임자였던 로널드 델라 로사 상원의원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한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

(사진=AFP)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45분께 필리핀 수도 마닐라 인근 파사이시 상원 건물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터져 나오면서 의사당 일대가 혼란에 빠졌다. 경비 인력들이 기자들에게 건물에서 나갈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사각지대에서 누군가 총을 쐈으며, 범인은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필리핀 매체 래플러가 공개한 영상에는 기자들이 황급히 대피하는 장면이 담겼다. 사상자는 없었다.

사건 발단은 지난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ICC가 델라 로사 의원에 대한 체포영장을 공개하자 필리핀 국가수사국(NBI)이 곧바로 영장 집행에 나섰다. 이에 델라 로사 의원은 상원 본회의장으로 피신해 동료 의원들의 보호를 받아왔다.

이후 전날 낮 필리핀 대법원이 그의 체포영장 집행 정지 신청에 대해 즉각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고 모든 당사자에 72시간 응답 기한을 부여했다. 추가 체포 시도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커지자 친두테르테 진영이 장악한 상원은 곧바로 건물 봉쇄 절차에 돌입했고, 그 직후 총격이 발생했다.

전직 경찰청장 출신인 델라 로사 의원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 재임기인 2016~2022년 ‘마약과의 전쟁’ 당시 경찰력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ICC는 이 기간 수천 명의 마약 용의자가 초법적으로 살해된 정황을 두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했으며, 지난해 3월 그를 헤이그 ICC 본부로 압송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ICC는 지난해 11월 델라 로사 의원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지난 11일 이를 공개했다. 영장에는 그가 2016년 7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최소 32명을 살해한 반인도적 범죄 혐의가 적시됐다.

총격 직후 알란 피터 카예타노 상원의장은 기자들 앞에서 “여기는 필리핀 상원이다. 우리가 공격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곧바로 TV를 통해 “정부 인력은 총격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로미오 브로너 주니어 합참의장은 “상원 경비를 담당하는 의회 경비대가 발포했다”고 밝혔고, 필리핀스타는 국가수사국(NBI) 소속 운전기사 1명이 용의자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자작극 가능성도 거론된다.

사흘째 농성을 이어가던 델라 로사 의원은 결국 이날 새벽 상원 건물을 빠져나갔다. 욘빅 레물라 필리핀 내무지방자치부 장관은 문자 메시지로 “그는 ‘전운’(fog of war) 속에서 건물을 떠났다”고만 전했을 뿐 행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의 근본 배경은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간 권력 투쟁이다.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한때 마르코스 대통령의 정치적 동맹이었으나, 부친이 ICC로 압송된 뒤 마르코스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며 결별했다.

마르코스 진영이 장악한 하원은 지난주 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고, 상원에서 탄핵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그런데 지난 11일 친두테르테 진영이 상원 다수 의석(24석 중 13석)을 확보하며 탄핵 정국 흐름이 바뀌었다. 델라 로사 의원의 캐스팅보트가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총격 사건 여파는 필리핀 경제로도 번졌다. 14일 마닐라 외환시장에서 페소화는 달러당 61.54페소로 0.3% 약세를 보였다. 필리핀 증시와 외환은 이미 정부 비자금 스캔들과 중동 전쟁발(發)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부진한 흐름을 이어오던 터다.

브로너 합참의장은 “병사들에게 침착하고 절제 있게, 전문가답게 행동하라고 지시했다”며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우리는 본분에만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6년 군부가 마르코스 시니어 대통령에 등을 돌리며 ‘피플 파워’ 시민항쟁이 성공해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던 만큼, 군의 거리두기 발언은 정치적 의미가 크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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