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 맞나요?"…특활비에 생일파티·체육복도 따로

안혜신 기자I 2018.10.15 18:35:23

어린이집 보육교사 김영란법 적용대상 제외
소풍 도시락에 스승의 날 선물도 챙겨
깜깜이 특활비에 생일파티 비용 따로 걷기도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가정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직장인 김수미(35)씨는 소풍을 앞두고 아이 도시락과 함께 어린이집 교사들의 도시락을 챙겨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 도시락 싸기만도 빠듯했지만 준비하겠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소풍 한달 전부터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와 부담이 너무 컸다”면서 “아이를 맡기고 있으니 감사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교사 도시락은 교사를 고용하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챙겨줘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비리로 적발된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면서 원 측의 불합리한 요구에도 참아왔던 부모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소풍 도시락에 스승의 날 선물도 챙겨

학부모의 고민이 가장 커지는 시기는 매년 돌아오는 스승의 날이나 명절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은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유아교육법 등에 따른 교원을 대상으로 한다. 즉, 초·중·고 교사나 유치원교사는 모두 법 적용 대상자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조금 다르다. 어린이집의 경우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누리과정을 운영하거나 공공기관의 직장어린이집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원장은 김영란법 적용을 받지만 보육교사는 제외다. 이렇다보니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는 교사 선물 마련에 대한 고충이 여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정미(34)씨는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는다는 어린이집의 말만 믿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부모들은 모두 선물을 보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이번 추석에는 한 커피숍 선불카드를 선물로 전달했다.

이 씨는 “학부모 상담 때도 아무 생각없이 빈손으로 갔는데 선생님 뒤에 케이크 등 선물이 놓여져있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면서 “차라리 어린이집도 모두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된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특활비에 생일파티 비용 따로 걷기도

‘눈먼 돈’도 여전하다. 어린이집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눈먼 돈은 추가 비용이다. 일부 어린이집은 대놓고 추가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명 ‘발도르프 교육(주입식 교육이 아닌 아이의 성장 과정에 맞춰 가르친다는 독일식 자연주의 교육)’로 유명한 A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박희정(32)씨는 매월 보육료 외에 추가로 13만원씩 어린이집에 납부하고 있다.

박 씨는 “학부모 오리엔테이션 때 원활한 운영을 위해 추가 비용이 월 13만원 발생한다며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이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을 원장이 직접 했다”면서 “조리사 채용과 유기농 식자재 구입 등에 사용한다고 설명하는데 식자재 같은 경우 부모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라 의심스러웠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특별활동비도 항상 잡음이 많은 항목이다. 어린이집은 아동의 영어, 미술 등 특별수업 명목으로 일정 수준의 특활비를 걷을 수 있다. 금액은 어린이집과 학부모가 협의해 결정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 보육현장에서는 대다수 어린이집이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특활비로 갈등을 빚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 생일파티 등에 사용하는 기타경비를 이미 받아놓고도 추가로 케이크나 선물 준비를 요구하거나 입학준비금에 원복, 체육복이 포함돼 있음에도 체육복을 구입 명목으로 돈을 걷기도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혹시나 불이익을 받을까봐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만 삭이는 경우가 많다. 두 아이를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김 모(38)씨는 “불합리한 일들이 보여도 당장 아이 맡길 곳이 마땅찮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적당히 넘어가자’고 눈치주는 다른 학부모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보육교사를 챙기거나 추가비용 지출 등이 불합리하다는 점을 알고 있어도 아이를 맡기는 입장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무상보육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게 얼마가 됐든 부모가 추가 비용을 내야한다는 점 자체가 취지와 다르며 형평성과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어린이.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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