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산·차입금 정보 깜깜…“공시보고 투자 판단 가능하겠나”

이건엄 기자I 2025.07.03 21:08:56

[기업 입맛대로 공시] ②
지분상품·채무상품 등 뭉뚱그려 표기
금융자산의 재무적 영향 내용도 부실
차입도 출처만 명시 세부 내역은 ‘실종’
“투자자 판단 제한…공시위반으로 봐야”

[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국내 상장사들이 투자한 금융자산 내역을 명확하게 공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지분상품과 채무상품 등 대략적인 분류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투자 상품명 등 핵심 정보를 세세하게 공개해 기업의 자금 운용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직결되는 차입금 역시 보다 세분화 된 공시를 통해 정보 진입 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CG=연합뉴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금융자산에 대한 자세한 기술을 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금융자산의 규모와 상장주식의 지분에 대한 일부 정보를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내역에 대해선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경상남도 창원시에 본사를 둔 주류업체 무학의 사례가 있다.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으로 잘 알려진 무학은 연간 매출을 웃도는 규모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무학의 올해 1분기 기준 주가연계증권(ELS) 등 당기손익인식금융자산 규모는 4169억원에 달한다. 무학은 이에 대해 금융상품 운용에 따른 신용위험과 유동성위험, 시장위험, 자본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명시할 뿐 재무상 미치는 영향과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투자한 금융상품이 어떤 상품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공시하지 않는 점도 투자자에게 벽으로 작용한다. 실제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 항목 아래 지분상품과 채무상품으로 나눠 총액만 제시할 뿐 구체적인 투자 내역은 확인할 수 없다.

일부 상장사 주식의 경우 지분상품 주석에서 별도로 밝혔지만 채무상품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005930)만 보더라도 사업보고서에서 투자한 금융상품의 공정가치를 공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투자 종목이나 조건은 명시하지 않았다.

이처럼 기업들이 금융자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이유는 신용위험 관리 전략이나 내부 거래처 정보 등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관련 내용을 자세히 공개할 경우 자금 운용 전략이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불친절한 공시’로 볼 수밖에 없다. 투자 자산의 성격이나 위험 수준, 유동성 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하는 투자자들은 기업의 자금 운용 현황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어 투자 판단에 제한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는 “기업의 유동성을 판단하는 핵심은 금융자산 명세”라며 “단기금융자산이 주식인지, 채권인지, 혹은 부실화한 자산인지를 알 수 있어야 유동성 리스크를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금융자산 항목을 세부적으로 공개했지만 지금은 뭉뚱그려서 공시하는 경향이 짙다”며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핵심 정보를 숨기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차입금의 상황도 비슷하다. 기업들이 사업보고서상 차입금의 출처는 명시하고 있지만 이자율을 구간별로만 공개하거나 상환조건을 모호하게 적는 등 여전히 투자자 입장에서 불친절한 공시가 이어지고 있다. 차입금의 경우 조달 비용이 기업 재무 안정성에 직결되는 만큼 보다 세밀한 공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포함한 주요 상장사들도 은행차입금에 대해선 대표 거래은행명과 대략적인 금리 범위만 공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차입 조건이나 상환 계획 등은 주석에서도 명시하지 않아 투자자들이 기업의 차입 구조를 면밀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차입금 정보는 기업 신용도를 평가하는 핵심 기준”이라며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조달했는지가 나와야 투자자도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기업과 상장사들이 차입금 내역, 금융자산 명세 등을 누락하는 것은 공시의무 위반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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