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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영의 메디컬와치]항바이러스제 350만명분 ‘폐기 위기’…조류독감 터지면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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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영 기자I 2025.11.11 14:46:49

내년 비축량 27% 급감…인구 대비 24.9→18.1%
유효기간 연장 더는 불가…선진국은 비축 늘려
“고령층 피해 폭증 우려…국가방역태세 구멍”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신종감염병이다. 신종감염병은 한 세기 전 약 5000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부터 사스, 신종인플루엔자와 가장 최근엔 코로나19까지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신종감염병의 위협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가장 유행 확률이 높은 시나리오 중 하나가 조류인플루엔자의 인체 감염이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야생조류나 가금류에 발생하는 동물전염병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지 않으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해외에서 인체 감염 환자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인체 감염 시 치사율이 약 60%에 달해 철저한 대비와 변이 감시가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조류인플루엔자는 항바이러스제로 완벽히 혹은 일정 부분 막을 수 있다. 이에 정부는 국민에게 신속히 항바이러스제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하고 있다. 2009년 당시 253만명분의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해뒀던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은 현재 1288만 명분까지 보유량을 늘렸다. 정부는 팬데믹으로 우려되는 조류인플루엔자 대비 차원으로도 인구 대비 항바이러스제 25% 비축 유지로 목표를 설정했다.

서태평양 국가에서의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현황. C 항목은 실험실서 확인된 사례이며 D는 사망자 수다. (자료=세계보건기구)
그러나 정작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이 줄어들 처지에 놓였다. 폐기해야 하는 항바이러스제를 다시 살 돈이 없어서다. 올해 말 유효기간 만료로 항바이러스제 350만 명분이 폐기될 예정인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질병관리청 예산안에선 항바이러스제 구입 예산을 찾아볼 수 없다. 당장 항바이러스제 350만 명분을 구매하지 않으면 내년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은 938만 명분으로 올해 대비 약 27.1%가 줄어든다. 인구 대비 비축률 또한 24.9%에서 18.1%까지 떨어진다.

심지어 정부는 항바이러스제 유효기간을 늘리는 식으로 비축량 감소를 피하기도 했다. 2015년 250만 명분을 구매한 항바이러스제 ‘리렌자’는 유효기간이 7년이었으나 3년을 늘렸다. 질병청은 같은 해 구입한 ‘타미플루’ 100만명 분 또한 유효기간이 3년 늘어 올해까지 비축할 수 있었다. 이마저도 더는 유효기간을 늘릴 수 없어 350만 명분이 폐기돼야 한다.

반면 선진국은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을 늘리거나 좀 더 효과가 좋은 의약품으로 교체하는 중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국가는 예산 부족과 자체 생산 등을 이유로 비축량을 줄이려다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으며 일본은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일본의 인구 대비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은 약 31%다. 올해 일본 인구수가 약 1억 231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약 3816만명 분의 항바이러스제가 비축돼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항바이러스제 부족이 신종감염병, 특히 조류인플루엔자 유행 초기 대응 실패로 이어질 수 있고, 고령층과 소아 연령에서의 사망자가 급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여러 차례의 전문가 검증과 논의를 거쳐 전 국민 대비 25% 비축량을 설정했는데, 이마저도 못 지키면 방역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하게 되면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항바이러스제로 버텨야 하는데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이 부족하면 (조류인플루엔자를) 제대로 막지 못해 고령층과 소아 연령에서의 사망자가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에서도 비축물자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신종 감염병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만큼, 항바이러스제는 국가 방역의 ‘기초 자산’”이라며 “주요 선진국들은 비축량을 꾸준히 늘리고 최신 의약품으로 교체하며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도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상시 비축과 주기적 갱신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2023년 수립한 신종감염병 대유행 대비 중장기 계획 카드뉴스 중 일부. 하루 100만 명 확진자 발생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다고 했는데, 항바이러스제를 재구매하지 않으면 단 9일 만에 항바이러스제 비축 물량이 고갈된다.(자료=질병관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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