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포들에게 고향은 오래된 필름처럼 군데군데 끊겨 있는 기억이다. 필자 역시 고향인 청주를 찾으면 옛 동네 이름 몇 개만 떠오를 뿐이다. 그래서일까. 교포 부부가 학창시절 형제처럼 지내던 친구를 찾아 보수동 골목을 헤매던 모습은 더 깊이 다가왔다. 한 시간 넘게 골목을 뒤진 부부는 재개발로 흔적 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곳에 진한 아쉬움만 남긴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변해버린 고향이 긴 세월을 돌아온 그들에게 놀라움과 함께 아득한 상실감도 안긴 셈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고 옛 사람을 찾는다. 재외동포가 고국을 방문하는 일은 바로 그 잊혀진 기억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관광의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한국을 그리워하는 740만 재외동포야말로 가장 충성도 높은 확실한 고객이기 때문이다.
현재 186개국에 흩어져 사는 재외동포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분명 일반 외국인 관광객과 다르다. 부모와 친지 방문 외에 학창시절 친구를 만나고 비즈니스 활동에 의료 서비스도 이용한다. 일반 관광객에 비해 체류기간도 긴 편이다. 길게는 한 달가량 머물며 숙박·쇼핑·맛집·여행 등에 아낌없이 지갑을 열어 지역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는다. 외국에서 나고 자란 자녀와 손주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전도사 역할도 한다. 이들은 대를 이어 한국을 다시 찾을 평생 고객이자 해외 현지에서 한국을 알릴 최고의 홍보대사다.
그동안 우리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740만 재외동포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항상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동경을 품고 사는지라 방문 수요가 꾸준하고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 추억을 찾아주는 여행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라진 옛 골목과 학교를 VR·AR 등 디지털 기술로 복원해 보여주거나, 지자체와 협력해 ‘옛 친구 찾기’를 도와준다면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둘째, 따뜻한 환대와 배려가 필요하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고국이 나를 환영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오랜 외국 생활로 우리말이 서툴고, 걷기 불편한 이들을 위한 세심한 서비스 제공도 필요하다.
셋째, 전 세계 한인회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대대적인 고향 방문 캠페인을 시작으로 한 번 고향을 다녀간 교포들이 현지에서 한국의 장점과 매력을 전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외동포들의 고국 방문을 지역 관광 활성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교포들은 서울뿐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밀양·강진·청주 등 지역 곳곳을 찾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 도시에는 그들의 방문이 지역 경제를 살찌우고 활력을 불어넣는 단비가 될 수 있다.
고국 방문을 마치고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를 찾지 못해 아쉬워하던 부부는 필자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집처럼 편안했어요. 고향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자랑스러웠어요.”
재외동포의 고국 방문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끊어진 시간을 다시 잇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들의 발걸음을 따뜻하게 맞이한다면 한국 관광은 한층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멀리서 찾아오는 가족을 맞이하듯 문을 활짝 열어 그들을 기다릴 시간이다. 그 따뜻한 마음이 한국 관광을 꽃피우는 든든한 밑거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십자가 비니가 뭐길래?…1400만원 눌러 쓴 올데프 영서[누구템]](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5/12/PS25121300213t.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