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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약품 한 임원은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기간에 제주도, 울릉도까지 1200만명이 무료 백신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하청을 하지 않으면 배송을 할 수 없다”며 “저희도 업력이 35년이 됐지만 의약품 배송을 하청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신성약품은 1985년 8월 21일에 설립됐다. 주된 영업은 의약품 도매업이다. 업계에서는 대형 의약품 유통업체로 분류된다. 신성약품이 정부와 조달 계약을 맺은 백신 배송 물량은 1259만 도즈(1회분 투여량)다.
이 임원은 “대한민국 어떤 업체가 낙찰을 받아도 이 구조(하청구조)를 깰 수 없다”며 “우리와 하청을 맺은 업체는 이전에도 국가예방접종사업에서 하청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회사도 규모가 큰 편이라 정규직이 150명이지만 하청을 주지 않고 1200만명분을 배송하려면 휠씬 많은 직원이 필요하다. 그 인원을 뽑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회사가 국가예방접종사업 백신 조달 사업에서 낙찰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사업만을 보고 추가로 대형 인원을 고용할 수는 없다는 하소연이다. 백신업계에 따르면 국가예방접종사업은 유동적이기 하나 5~6월쯤 입찰 공고가 나고 7월쯤 최종 낙찰이 돼 8월부터 출하에 들어가 9월에 백신이 병원에 깔리기 시작한다.
이 임원은 “올해는 입찰이 시작된 지 2개월이 지나 선정돼 너무 촉박하게 배송됐어야 한다”며 “독감 유행 시기 전에 배송돼야 하고 정부에서도 고시한 접종시기가 있지만 9월 3일에야 계약이 체결됐다”고 말했다. 올해 독감백신 무료접종은 9월 8일에 시작됐다.
백신 조달 공고는 조달청이 낸다. 이후 의약품 유통사와 같은 도매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낙찰하면 이 회사가 제조사에서 백신을 주문해 진행한다. 앞서 조달청은 지난 6월 30일부터 올해 독감 백신 조달 입찰을 실시했다. 하지만 낮은 유통가로 4번이나 유찰된 끝에 지난 9월 4일에야 신성약품이 최종 계약을 맺었다.
이 임원은 또 “최종 (백신) 납기일은 10월 22일이지만 1차 납기일인 9월 18일과 2차 납기일인 10월 8일까지 전체 물량의 대부분인 1000만도즈가 넘는 물량을 배송해야 한다”며 “9월 8일부터 배송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상 한달만에 배송을 끝내는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질병대응연구센터장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지만 현재는 정부(질병관리청)가 백신의 유통관리를 못 하고 있고 (업체는) 하청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백신 유통 관리가 국가의 관리망에 들어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백신업계 한 관계자는 “독감 백신은 시즌(계절) 제품이기 때문에 전국으로 다 커버할 수 있는 물류망을 갖춰놓기는 쉽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주요 지역은 직접 배송을 하더라도 전국의 말단 지역에 대한 배송은 대행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국가예방접종사업 백신 배송 과정에서 하청이 불가피하더라도 하청에 따른 결과, 배송 직원에 대한 콜드체인 교육부터 관리 감독 소홀 등은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성약품은 독감백신을 직접 모두 배송하지는 않고 일부를 다른 위탁업체에 맡겼다. 이 위탁을 받은 업체가 또 다른 업체에 다시 하청을 줬는데 이 과정에서 배송 기사들이 냉장차 문을 열어두거나 백신을 야외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채 센터장은 “국가가 백신의 유통 관리까지 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현재 지키지 않아도 되는 권고안 수준의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을 어길 경우 처벌 규정을 만드는 등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7월 질병관리본부 시절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만든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은 백신 수송 용기의 기준과 보관 시간 등을 안내하고 있지만, “민원인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사항이 아님을 알려드린다”고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