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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한때 금호아시아나를 재계 9위까지 끌어올렸던 대우건설과 CJ대한통운의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자 2009년 7월 퇴진한 바 있다. 2010년 10월 그룹 회장직에 복귀한 박 회장은 9년 만에 다시 경영 실패에 책임지고 사실상 경영 은퇴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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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29일 열리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주주총회를 하루 앞두고 박 회장이 주주와 여론의 극심한 반발을 고려해 결심을 내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한 관계자도 “박삼구 회장이 대주주로서 그동안 야기됐던 혼란에 대해 평소의 지론과 같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차원에서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호를 세운 고 박인천 창업자의 3남으로 태어난 박 회장은 19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하며 금호에 첫발을 내디뎠다. 1979년 입사 12년만에 금호실업 대표이사에 오른 박 회장은 이후 특유의 카리스마와 승부사 기질로 승승장구했다. 특히 2006년대우건설, 2009년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해 금호가 순식간에 매출 26조원대의 재계 7위 그룹으로 올라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너무 비싼 가격에 인수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경영이 어려워지며 그룹에 큰 부담을 줬다. 결국 그룹 전체가 격랑에 휩싸이는 결과를 초래했고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매각했다. 또 지난해에는 금호타이어를 중국의 더블스타에 매각하는 비운을 맞으며 그룹이 쪼그라들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에 성공했지만, 무리하게 사세를 키워 ‘승자의 저주’에 빠지게 되면서 커진 유동성 위기가 커진 결과”라고 했다.
박 회장은 누구보다 그룹 경영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금호아시아나는 형제간 경영 승계를 통해 60세가 되면 회장직을 물려주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박인천 창업주가 작고한 후 장남(박성용)→차남(박정구)→3남(박삼구)의 형제 승계로 이어져 왔다.
박 회장은 최근 어렵게 지킨 경영권을 놓고 ‘책임경영’과 ‘용퇴’ 사이에서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임직원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주주와 채권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퇴진이 임직원에게 책무를 다 하지 못한 것이라는 모순에서 고심했다”며 “일생을 함께해온 그룹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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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호아시아나는 지난해 기내식 대란에 이어 올해 회계감사 논란까지 겹치면서 악재가 계속됐다. 광화문 사옥 매각과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고 있던 CJ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의 잔여 지분까지 모두 매각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박 회장의 퇴진으로 최고경영자(CEO) 경영 공백이 불가피한 금호아시아나는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다. 그룹은 당분간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를 운영해 경영상의 공백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금호아시아나의 3세 경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 회장의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경영 수업을 받고 있지만, 아직 그룹 핵심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등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보지 못한 터라 시기상조로 판단하고 있다. 업계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고강도 재무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박 회장도 “이른 시일 내에 명망 있는 분을 그룹 회장으로 영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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