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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세종=박종오 기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우리 경제는 ‘시계제로’ 상황을 맞게 됐다.
일단 우려가 적지 않다. 이번 탄핵안 가결로 인해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추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별검사가 줄줄이 예정돼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도 기다리고 있다. ‘본게임’인 대선이 당겨질 가능성도 크다. 내년 우리 경제는 정치의 대격랑에 휩싸이는 것이다.
내년이 경제성장률 기대치가 당초 3%대에서 2%대로 내려오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 정책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모든 이슈 빨아들일 ‘정치의 계절’
국회는 9일 본회의를 열고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단독 상정하고, 표결에 부쳤다. 재적의원 300명 중 여야 의원 299명이 참여해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가결됐다. 이는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심판 사건이 헌재에 접수되면, 그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헌재는 선고를 해야 한다. 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이 확정된다.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에는 63일 만에 선고했다. 최장 6월까지는 우리 사회 전체가 정치적 대격랑에 출렁일 수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헌법 68조에 따라 대선은 그때부터 60일 이내 실시돼야 한다. 여름 이전에는 대선이 치러진다는 의미다. 이날 탄핵안 가결 직후 치러질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때도 정치권의 수싸움은 치열해질 게 뻔하다.
‘대선 정국’은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날 가결로 불확실성이 걷혔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그보다 ‘정치 과잉의 시대’가 야기할 정책 동력의 상실 우려가 더 커보인다. 이런 불확실성은 경제 첨병인 산업계의 대규모 투자와 사업 재편 등을 지연시킬 가능성도 농후하다.
금융권 고위인사는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해서 불확실성이 사라진 게 아니다”면서 “이후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는 정치 스케줄이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경제 불확실성은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는 당장 경제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6번의 대선 연도의 성장률은 대선 직전 연도보다 평균 0.5%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탄핵안 가결 직후 “이제 더이상 혼란은 없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백척간두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지만, 경제계의 기류는 이와 온도차가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나라 밖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발(發) 보호무역주의가 우리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걱정마저 일부일 수 있다. 최근 미국에 이어 유럽을 중심으로 한 고립주의 노선 때문이다. 수출 전략을 면밀히 세워야 할 때인데, 정작 컨트롤타워 없이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정책금리를 올리려 하는 점도 부담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정책당국 한 인사는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는데 그나마 예측 가능한 요인들도 대부분 하방 리스크”라면서 “악재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타격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한국은행 ‘비상대응 체제’
상황이 이렇자 경제정책 당국은 비상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사실상 경제 컨트롤타워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후 8시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장관을 소집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총리가 탄핵안 가결이 경제 주체의 불안감으로 확산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대국민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와 3대 신용평가기관, 해외 투자은행 등에 유 부총리 명의의 서한도 보낼 계획이다. 탄핵 정국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고, 국외 투자 유치를 위한 정책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인 10일 오전에도 관계기관 합동 비상경제대응반 회의를 개최한다. 유 부총리는 이어 경제 5단체장과 비공개로 오찬 간담회를 하고 민주노총과 한국노동 등 양대 노총 위원장과도 면담하기로 했다. 11일에도 외신기자 간담회와 기재부 확대간부회의를 소화하고, 12일에는 정세균 의장과 만날 계획이다.
한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가결 직후 간부회의를 열고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국내 정국 불안이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과 실물경제의 하방위험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의 불안심리가 과도하게 확산되지 않도록 일반 경제주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노력도 강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탄핵안 가결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한은으로서는) 해외 투자자의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해외 반응을 지켜보고 다시 한번 점검회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10일 오전 간부회의를 다시 주재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경제 컨트롤타워 기능을 할 수 있는 정부주체를 확립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민간의 심리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