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의 '채찍'·폼페이오의 '당근'..왜 동시에 나왔나

이준기 기자I 2018.05.14 17:14:09

볼턴, 北核 보관할 ''테네시 오크리지'' 언급..시리아 해법으로 ''압박''
폼페이오 "美, 민간 투자 허용할 것"..장미빛 미래 제시로 ''회유''
''美제안 불신'' 김정은에 ''결단'' 촉구..폼페이오...

사진=연합뉴스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해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북한이 폐기할 핵시설·핵물질을 보관할 장소까지 정해놓았다는 의미다. 테네시 오크리지는 2004년 리비아의 핵시설·핵물질을 옮겨놓은 곳으로,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해제·경제보상’이라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재차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라는 김정은(사진 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의 해법은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같은 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폭스뉴스·CBS방송에 잇따라 출연한 자리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의 민간투자가 허용될 것”이라며 “북한의 에너지 망 건설과 인프라 발전을 미국의 민간 부분이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대동강 변에 트럼프 타워나 평양에 맥도날드를 열거나, 미국과 컨소시엄 합작사업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발언과 비슷한 취지의 언급이 미 국무장관의 입에서 직접 나온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의 양대 축인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이 한날한시에 각각 ‘채찍’과 ‘당근’을 강조한 것으로, 이를 두고 ‘역할분담’을 통해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결단을, 즉 비핵화 초기에 일부 핵탄두와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폐기를 촉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머나먼 신뢰..김정은 ‘강한 의구심’

워싱턴 조야에선 폼페이오 장관과 김 위원장이 지난주 제2차 평양 회동을 통해 양측 간 최대쟁점 사안인 ‘비핵화’와 ‘체제보장·경제보상’을 놓고 어느 정도 큰 틀의 합의를 봤을 것이라는 걸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양측 모두 지난(至難)한 비핵화 과정을 담보할 만한 ‘신뢰’가 아직 쌓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4·27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간 고위급 접촉 등을 통해 불신의 틈새가 일단 봉합돼 있지만, 언제든 수가 틀린다면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가뜩이나 최근 미국의 이란핵협정 탈퇴 선언을 똑똑히 목도한 김 위원장으로선 ‘미국은 신뢰하기 힘든 나라’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각각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와 ‘워싱턴 불바다’를 거론하며 서로 ‘핵 버튼’에 손을 올리고 있던 사이였다.

김 위원장이 미국의 빅딜 제안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라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실제 14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최근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미국이 비핵화를 종료하면 경제지원을 한다고 하지만, 약속을 지킬지 믿을 수 없다”며 비핵화 중간단계에서 경제지원을 받을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한다. 요미우리는 외교소식통을 인용, “북·미는 협상에서 비핵화 완료 시기와 검증방법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며 “비핵화 대가로 대규모 경제지원을 기대하는 김 위원장은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어떤 경제적 지원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점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고 분석했다. .

◇폼페이오, 백악관·김정은 중재 나섰나?

일각에선 폼페이오 장관과 김 위원장 간 회동 이후 이어진 양측간 물밑접촉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으로선 내달 12일 싱가포르라는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까지 천명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결단’이 늦어지자,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이 잇따라 ‘채찍’과 ‘당근’을 각각 들고 나왔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막후 조정자인 볼턴 보좌관이 ‘압박’, 실무책임자인 폼페이오 장관이 ‘회유‘라는 역할분담에 나섰다는 얘기다.

한편에선 합의에 실패하더라도 ‘비핵화 원칙을 깨선 안 된다’는 워싱턴 내 ‘강경파’를 의식한 언행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의 결단을 위해 ‘당근’이라는 시그널을 줘야 하는데, 이 경우 미국 내 강경파가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한 만큼 ‘압박’을 동시에 내세웠다는 의미다.

트럼프 외교안보 라인 내부에 미묘한 엇박자가 나오는 것에 주목하기도 한다. 김 위원장과 백악관을 이어주는 끈 역할의 폼페이오 장관이 백악관의 ‘선(善) 비핵화 후(後) 경제보상’ 원칙과 김 위원장의 ‘동시적·단계적’ 비핵화 조처 사이에서 접점을 찾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비핵화-체제보장·경제보상’을 2~3개의 큰 덩어리를 묶는 식으로 양측이 한 발씩 물러서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폼페이오 장관이 중재에 나섰다는 얘기다.

한 소식통은 “양측 모두 ‘신뢰’를 쌓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상태”라며 “향후 북한에 무게를 실어줄 중국의 입김도 작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정치적인 ‘주고받기 식’ 타협이 이뤄질 공산도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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