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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증 자료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건 1948년 독도 폭격 사건과 관련된 미군 조사 보고서다. 독도 폭격 사건은 1948년 6월 8일 미극동공군 제93폭격전대 B-29 20기가 독도를 폭격연습 표적으로 삼아 1000파운드(약 464kg) 폭탄 76발을 투하하면서 조업 중이던 한국 어민 14명이 사망 또는 실종하고 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독도는 1947년 9월 16일 미군의 폭격연습지로 지정됐으나 연습 계획이 매번 현지에 통지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NARA 산하 국립공문서관 2관 문서실에 소장된 총 222쪽 분량의 문서철로, 2급 비밀로 분류됐던 문서다. 재단은 광복 직후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뒷받침하는 미공개 기록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2023년 NARA를 방문해 최대 5000장이 담긴 문서 박스 1060개를 뒤지며 이 자료를 처음 찾아냈다. 이후 만난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에게 이를 언급하면서 이번 기증까지 이어지게 됐다. 전 교수는 “폭격 실행 부대의 임무보고부터 한국인 생존자의 진술서, 울릉도 경찰의 국한문 보고까지 가해와 피해 양측의 기록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폭격 사건 직후 미 극동공군사령부(FEAF)가 작성한 공식 조사보고서엔 1947년 9월 당시 독도가 한국의 일부(a part of Korea)임이 명확히 확립(definitely established)돼 있다고 기록됐다. 미군 당국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공식 문서다.
이는 독도 영유권 논란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에 일본이 포기할 영토에 독도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과, 협상 과정에서 나온 시볼드 제안(1949년), 러스크 서한(1951년)을 들어 미국이 독도를 일본 관할로 봤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문서는 그 이전인 1947~1948년 미국이 이미 독도를 한국 영토로 공식 인식했다는 점에서, 이후 일본 측의 주장이 왜곡에 불과하다는 반박 논거가 될 수 있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은 “해당 자료는 미 당국이 독도를 명백한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식 문서로, 향후 독도 영유권 대응 논리를 굳건히 할 중요한 근거”라고 설명했다.
한국(울릉도)에서 생산된 자료도 발굴됐다. ‘울릉도 소속 독도 영유 확인의 건’(1946년 4월 25일)은 광복 직후 울릉도사(울릉도를 관할하던 행정 책임자)가 경상북도지사에게 독도가 울릉도 소속임을 7가지 근거를 들어 진술한 문서다. 이전부터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에서 조업해왔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도 영유권 문답서’(1948년 6월 16일)는 울릉도사가 미군정 법무관에게 제출한 보고서로, “한일병합 전까지 한국 영토로서 어획물을 독점 채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홍 실장은 “한국 측 주장이 아닌 미국 스스로 작성한 기밀문서에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기록하고 있다”며 “문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자료집과 논문, 저서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