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뿐만 아니다. 한반도의 시계는 여전히 1952년 냉전구도를 낳았던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머물러 있다. 2018 남북 정상회담은 지구상에서 폐기처분된 ‘냉전 체제’의 종식을 고하고자 하는 시발점이다. 우리의 주도로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하는 시도라는 함의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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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가 지난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전문의 키워드 빈도 분석을 통해 당시 회담에서 중점을 뒀던 부분을 살펴봤다. 1차 회담에는 ‘통일’이라는 단어와 ‘김대중’, ‘김정일’ 등 양측 지도자의 이름이 앞섰다. 양측 정상의 첫 만남이었던 만큼 구체적 문제 해결보다는 관계 회복이 우선됐다. ‘상봉’이나 ‘서울’, ‘방문’ 등의 단어가 이를 뒷받침한다.
2007년 2차 정상회담 때는 양국 지도자의 이름이 사라졌다. 정상 간의 만남 자체가 화제가 되기보다는 ‘남북 관계’를 ‘공동’ ‘협력’으로 ‘추진’하거나 ‘발전’시켜 ‘민족’의 ‘평화’를 기원했다. 경제 협력을 통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 낼수 있다는 믿음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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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번 회담을 통해 발표될 ‘판문점 선언’ 혹은 ‘4·27 공동선언’에는 ‘통일’과 같은 지나치게 이른 논의나 ‘협력’과 같이 부차적인 의제는 뒤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에 집중하는 회담이니 만큼 선언문의 길이도 전문과 별항을 포함해 10개항에 달했던 2007년 10·4 공동선언보다는 400여자 남짓한 6·15 공동선언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손으로 쓰는 2018 新동북아 균형
지난 1953년 맺은 정전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지구상의 유일한 땅이다. 공산주의의 득세를 막기 위해 195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48개국이 합의해 만든 낡은 체제가 아직도 유효하다.
이후 1989년 냉전 체제를 저물게 한 몰타 선언을 통해 국제사회는 새 협력 시대로 접어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남측 역시 뒤이어 러시아 및 중국과 수교를 이뤄냈지만 끝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는 실패했다. 30년전 몰타에서 전세계가 핵무기 등 군비 감축에 동의했지만 이후에도 한반도는 지속적으로 군비 경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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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회담의 성격을 ‘길잡이 회담’으로 규정한 것도 우리가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 선언을 통해 국제사회의 주의를 끌었고 비핵화의 가능성을 내비친 이상 이번 회담이 ‘말의 성찬’으로 끝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