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th SRE][INDUSTRY]"국내외 모두 불안하다"…우려 다시 높아진 건설

이명철 기자I 2018.05.16 15:10:50

업황 악화 예상 1위 건설…전기전자는 개선 기대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크레딧 업계에서 건설업에 대한 애증의 역사는 길다. 지난 몇 년간 주택경기 호황으로 우려가 걷히는가 싶었지만, 다시 업황이 가장 우려되는 산업으로 꼽혔다. 현대·기아차 중심인 국내 자동차 업종은 판매 부진이 계속되면서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실적·재무 개선세를 이어가고 있는 전기전자는 여전히 업황 개선이 가장 기대되는 산업이다. 상승 사이클을 타고 있는 화학, 정유에 대한 기대감도 견고했다.

27회 SRE 조사에서 향후 1년 내 업황 악화가 예상되는 산업으로 건설이 96표(51.1%)를 얻어 1위에 올랐다. 26회 1위였던 자동차는 93표(49.5%)로 2위를 차지했다. 신용카드 35표(18.6%), 캐피탈 29표(15.4%), 철강 28표(14.9%)로 5위권을 형성했다. 전기전자는 1년 내 업황 개선이 예상되는 산업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51표(27.1%)를 받았다. 이어 화학 49표(26.1%), 은행 44표(23.4%), 정유 40표(21.3%), 항공 30표(16.0%) 등 순이었다.

◇ 건설, 9회만에 1위로…경기 하락세 직격탄

건설 산업이 업황 악화 항목에서 1위에 오른 것은 2013년 하반기 실시한 18회 SRE 이후 9회만이다. 당시 조사에서 건설업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 1위로 꼽힌 바 있다. 2014년 들어 주택 경기가 회복하면서 아파트 분양 붐이 일었고 건설 업황은 물론 건설사 펀더멘털도 크게 개선됐다. 21회 때는 업황 개선이 예상되는 산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주택의 꾸준한 공급과 정부의 규제 강화로 다시 건설 업황의 하락세를 예상하는 분위기다. 이미 지난 24회와 25회 연속 업황 악화 예상 산업 2위에 오르면서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기도 했다. 이번 조사에서 크레딧 애널리스트와 채권매니저 중 가장 많은 39명(54.9%), 43명(51.8%)이 악화 예상 산업으로 건설을 꼽았다. 한 SRE 자문위원은 “대우건설 손실로 해외 사업 불확실성 이슈가 다시 발생했고 부동산 경기도 다운사이징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많아졌다”며 “사업 지역이나 수주 유형 등에 따라 건설사 간 대응 능력이 차별화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용평가사들도 하향세로 접어드는 건설업에 대해 경고를 던지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올해 3월 주택경기 하방국면 진입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건설사의 외형 감소와 수익성 하락 대응을 촉구했다.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건설업 원가 관리 능력과 잠재 부실에 대해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나타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경제협력이 가시화될 경우 수혜 산업이 건설업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나긴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SRE 자문위원은 “북미 수교만 이뤄져도 건설사가 혜택을 입을 것”이라면서도 “북미 정상회담 등 절차가 많은 만큼 1년 내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 자동차, 여전히 불안…카드·캐피털도 우려

자동차 산업은 전회보다 한 계단 내려왔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보내는 시장 참여자들이 많다. 1위를 기록한 건설과는 3표 차이에 불과하다.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건설과 함께 1년 내 가장 업황 악화가 예상되는 산업으로 자동차를 꼽았다. 채권매니저 중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현대·기아차의 G2(중국·미국) 자동차 판매는 최근 소폭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부진해 수익성 저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의 고통은 부품업체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신용평가 3사는 올해 4월 현대·기아차 계열 현대위아의 신용등급(AA) 전망을 ‘부정적’으로 일제히 하향 조정했고 한신평은 작년 말 성우하이텍의 신용등급을 ‘A-’로 강등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미국 보호무역주의 본격화도 우려 요소다. 한 SRE 자문위원은 “미국은 자동차 시장 자체가 줄어들고 중국도 회복세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라며 “판매 부진이 계속되면 현지에 진출했거나 현대·기아차 비중이 높은 부품업체들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회에 이어 3위를 유지한 신용카드는 소액 다건 결제업종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와 대출 금리 24% 이하로의 변경 등 수익성 악화 압박에 직면했다. 반면 미국 기준금리 인상 이후 시장 금리 상승이 예상되면서 조달 비용 증가도 예상되고 있다. 캐피탈 산업 역시 조달 금리 상승과 한국GM의 한국 철수 시 자동차 금융 타격에 대한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 전기전자 3회째 1위…디스플레이는 우려

전기전자 산업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굳건했다. 지난 25회부터 3회 연속 향후 1년 내 업황 개선 산업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크레딧 애널리스트 중 가장 많은 19명(26.8%)이 전기전자를 꼽았다.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매번 사상 최고치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약 53조원, 13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올해 1분기에는 영업이익률 50%를 돌파했다. NICE신용평가는 SK하이닉스의 실적·재무 개선을 반영해 최근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올렸다.

다만 같은 산업 내에서도 부문별로 차별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반도체는 국내 업체의 견고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사업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디스플레이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존재한다. 한국기업평가는 올해 4월 LG디스플레이의 신용등급(AA)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추기도 했다.

또 다른 SRE 자문위원은 “디스플레이의 경우 현재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넘어가는 시기로 설비 투자가 늘어나는데다 중국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며 “투자 부담에 따른 실적 부진 터널을 얼마나 짧게 벗어나 수익성이 본궤도에 오를지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 정유·화학 굳건…항공 처음 5위권 등극

정유와 화학 산업도 당분간 업황 개선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화학은 최근 5회 간 조사에서 26회(3위)를 제외하고 1년 내 업황 개선 산업 2위를 차지했다. 정유 역시 최근 3회 연속 3위를 유지했다.

화학은 미국 에탄분해설비(ECC) 증설에 따른 공급 부담이 있지만 견조한 전방 수요와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양호한 수준의 수익성을 이어갈 전망이다. 다만 중국의 파라자일렌(PX) 증설과 국내 정유사의 석유화학사업 투자는 잠재 위험으로 분류된다. 정유도 수요 성장세와 제한적인 설비 증설 등을 고려할 때 정제마진이 견조한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대규모 신규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금 창출력이 개선되면서 대응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항공은 업황 개선 설문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5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유가 상승세에도 항공 여객 및 화물 수요 증가가 계속되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계열 지원 부담 완화까지 더해져 안정적 신용등급을 유지할 것이라는 게 신평사측 의견이다. 최근 갑질과 탈세 의혹으로 오너 리스크가 반영되고 있지만 사업과 재무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판단이다. 은행은 금리 상승기 순이자 마진 개선 등 우호적 영업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채권자도 손실을 부담토록 하는 베일인(Bail-in) 제도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면 은행과 은행지주 신용도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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